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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미국에서 유명한 내과의사이며 호스피스를 공부한 의사가 절친한 친구가 말기 암에 걸리자 급히 한국으로 왔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의사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동행했던 수녀님에게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네요. 꽤 유명한 의사이자, 호스피스의 권위자라고 자부했던 제가 친구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라며 마음 아파하자, 수녀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무려 4시간이나 친구 곁에 있어줬고, 목마른 친구에게 물도 한 잔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까?"

청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를 취재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얼마 전, 청주 성모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호스피스 봉사자들과의 인터뷰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진솔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듣는 와중에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진지한 자문(自問)까지도 하게 되었다. 현재 청주 성모병원에서 활동하는 호스피스 인원은 약 30여명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호스피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병실을 돌아가며 말기 암환자들을 돌본다. 이들은 주로 말기 암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시작으로 마사지, 목욕, 영적케어를 주로 맡는다고 한다.

얼마 전에 청주 성모꽃동네에 입소한 한 폐암말기 환자의 이야기를 호스피스 봉사자가 들려주었다.

"당신들은 참 할 일 없나 봐요. 남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 돈 벌러 가고, 누구는 아파서 누워있는데…."

오랜 투병생활로 지친 환자가 건넨 뜻밖의 인사말에 봉사자는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환자에게 다가섰다. 환자의 비뚤어진 심리의 원인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건강한 사람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이 뒤섞인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봉사자는 환자의 발을 말없이 주무르며 "모든 봉사자가 형편이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환자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늘 품속에 넣고 다니던 유언장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천국의 소망 그리고 장기기증과 함께 장례 후, 남겨진 모든 재산을 가톨릭대학에 기부할 것 등이었다. 그러자 비로소 환자는 마음의 문을 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그 말기 암환자는 임종 전까지 전보다 훨씬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호스피스 봉사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예고된 죽음은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도 만든다. 반면 삶을 경건하게도 만들기도 한다. 호스피스는 바로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남은 삶을 경건하게 맞이하고 평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후세상은 아무도 모른다. 그 어둡고 컴컴한 세상의 문을 열고 막 들어가려는 말기 암환자들에게 호스피스 봉사자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가슴에 꼭 안겨주는 사람들이다. 그 따뜻한 불씨 하나가 마음에 점등(點燈)되면 두렵고 어두웠던 마음에 빛이 되고, 용기와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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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