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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36도씨의 따뜻한 물은 긴장을 가라앉힌다. 그 온도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나조차 어쩔 도리 없이 녹아내린다.'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던 웹툰 만화 '목욕의 신'에 등장하는 첫 대사다. 만화 '목욕의 신'은 남자 주인공 허세가 빚 독촉에 시달리다 '금자탕'이라는 목욕탕에 숨어들면서 만난 때밀이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 찾기'를 하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감성으로 재치 있게 그려내 만화가 하일권씨를 단숨에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화제작이다.

목욕은 때를 미는 행위를 넘어 삶의 작은 휴식이기도 하다. 만화 '목욕의 신'에 열광하던 나는, 가까운 목욕탕에 가서 직접 때를 밀어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방문한 곳이 금천동에 있는 한 허름한 목욕탕 '백만탕'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때를 밀고 있는 사람은 거의 환갑이 다된 노인이라 망설여졌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때를 밀고 싶은데 언제쯤이면 끝날 것 같나요?"라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잘 모르오. 밀어 봐야 압니다."

밑도 끝도 없이 밀어봐야 안다니. 예를 들면 '한 2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든지, '순서가 밀렸으니 다음에 오라.'라고 말해주면 좋지 않은가. 기다리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애매했다. 괜한 오기가 생겨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해놓고, 무작정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내심 불친절한 때밀이라고 투덜대며 후회했다. 그런데 그 마음은 내 차례가 돌아오면서 그의 말 한마디에 말끔히 풀려버렸다.

"전 제가 지금 때를 미는 손님에게만 최선을 다합니다. 다음 손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지금 내 손님에게 소홀해지거든요."

막상 그의 손님이 되는 순간부터 난 일반 서민에서 황제로 격상된 느낌이었다. 손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목욕의 신'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 품위와 격조가 있었다. 근육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길은 마치 물이 흐르듯 편안했으며 관절을 꺾을 적에는 정중하면서도 예의를 다했다.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는 때수건과 살갗이 부딪히는 마찰음마저도 경쾌했다. 때론 강렬하고 때로는 섬세하게, 즐거운 연주처럼 리드미컬하게 내 몸을 밀어 주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그에게 "언제쯤 때를 밀 수 있나요?"라고 또 다른 손님이 탕 안에서 물어왔다. 그의 대답은 똑같았다. 약간은 퉁명스럽기까지 했다.

"잘 모르오. 밀어봐야 압니다."

그의 대답은 그의 신념을 대변하는 강직한 충신의 제언처럼 들렸다. 처음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그는 성스런 제례의식을 마친 제사장처럼 진중했고, 모든 열정을 쏟아냈다. 단언하건대, 나는 지금까지 때를 밀면서 이보다 더 과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만화 '목욕의 신'에서 주인공 허세가 선배인 강해에게 "우린 그냥 때밀이잖아요? 진짜 별것도 아닌 일을 왜 그렇게 심각하게 열 올리면서 하세요?"라고 묻자, 강해는 "그러는 넌, 뭔가 열심히 해봤냐?"라고 반문한다.

삶이 지루하고 나태하게 느껴질 때, 그때의 '백만탕' 때밀이를 떠올리면 온 몸에 스쳤던 그의 열정이 나를 일으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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