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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바야흐로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가을 산을 오르는 삽상함과 가을 공원을 산책하는 운치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가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기에는 재래시장이 제격이다. 시장의 흥성스러움은 사철 맛볼 수 있는 것이지만, 가을철 시장의 모습은 특별히 풍성하고 정이 넘친다. 유난히 가을볕이 좋던 지난 주말 천천히 산책하듯 재래시장을 둘러보았다.

잘 정돈된 대형마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시장에는 있다. 그리 크진 않지만 동글동글 야무진 토종밤, 산에서 직접 따온 밤버섯과 능이버섯, 산에서 주운 산밤, 시골집의 울타리에 심어 열리는 넝쿨 호박 등 귀한 먹거리들이 지천이다. 마트의 상품처럼 매끈하진 않지만 그 맛의 풍미는 깊고 각별하다. 호박만 하더라도 대량으로 생산되어 같은 크기, 같은 색깔의 일률적 형태의 호박이 아니라, 약간 투박한 모양새에 다채로운 농도의 빛깔을 가진 넝쿨 호박이 훨씬 맛있다.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지져 먹으면 고기반찬보다도 깊은 맛이 우러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의 긴 여름방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이면 할머니는 꼭 이 호박을 부쳐 주셨다. 밥상머리에 앉으셔서 호박부침을 따뜻한 밥에 얹어 주시며, 밥을 퍼먹는 손자 얼굴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시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호박부침에는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스며 있는 것만 같다.

그 맛있는 넝쿨호박이 한 개에 천원인데 이천원에 세 개 가져가란다. 더불어 연한 호박잎도 천 원어치 샀다. 호박봉지를 들고 가다 보니 앙증맞게 동글동글 작은 표고버섯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한 바가지에 삼천원. 한 웅큼을 더 얹어 준다. 그 옆 할머니의 토종밤 큰 됫박이 삼천원인데 이 또한 역시 한 웅큼을 더 담아 준다.

밤을 사고 있는데 옆에서 포도를 파시던 아주머니가 신품종이라며 맛이나 보라고 포도송이를 건네준다.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보니 설탕처럼 달다. 만 원어치를 달라고 했다. 2kg에 만 원이라는데 저울은 2.5kg 가까이 가리킨다. 그 모습을 보자니 문화평론가 이어령의 수필 내용이 떠오른다.

이어령이 파리에 거주할 때인데 한번은 시장에서 고추를 샀다고 한다. 저울에 달아서 파는데 구입하는 양의 눈금이 조금 넘더란다. 그러자 그 상인이 고추 하나를 덜어 내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눈금이 조금 모자랐다. 상황이 그리되자 상인이 안에서 가위를 들고 나와 고추를 반으로 잘라 저울 눈금을 정확히 맞추더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어령은 우리의 시장 인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곡식이든 과일이든 고봉으로 퍼주면서도 자꾸 됫박 위에 물건을 쓸어 올리고, 저울을 달 때면 눈금을 조금 넘게 줘야 하는 그 인심 말이다. 서양의 계산법과 상거래가 아무리 합리주의라 좋다지만, 우리의 인심은 그 합리주의를 넘어서는 초합리주의 아니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시장에서 돌아오며 돈 이만원으로 농사의 노고도 없이 갖가지 채소와 과일을 한 아름 거둬오는 것이 어쩐지 미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차를 두고 온 것이 후회될 정도로 양쪽 팔이 떨어져 나갈 듯 무거웠다. 산책하듯 시장 왔다가 물건 위에 잔뜩 얹혀진 초합리적 인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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