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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30년 전, 내가 K사단 연대본부에서 복무했을 때의 일이다. 김병장은 K사단 연대본부 행정병이었다. 성실하면서도 인품이 훌륭한 병사였다. 당시 연대 본부의 병사들은 장교들의 편의와 연대의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병 성격이 강했다. 테니스병, 이발병, 취사병, 행정병, 보일러병과 같이 대부분 전투와 관계없는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본부 중대장이란 직책은 P대위에게는 소령으로 진급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인 셈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인사권자인 연대장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P대위는 자신의 부하들조차 출세도구의 한 방편으로 생각했다. 휴가 가는 병사들에게 모종의 뒷거래도 서슴지 않았다. 중대장이 줄 수 있는 특별휴가증도 암암리에 거래의 대상이 되곤 했다. 아시다시피, 전방에서의 휴가는 얼마나 달콤한 선물이던가. 그러다보니 본부대 병사들은 자신들의 집에 있는 값비싼 그림이나 물품 등을 조건으로 중대장과 은밀한 거래를 하곤 했다. P대위는 병사들로부터 획득한 것들로 자신이 아는 온갖 진급루트를 찾아 뇌물로 제공했을 터였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P대위의 이런 진급욕망에 부응하지 않는 유일한 병사가 김병장이었다. 그에게는 면회 오는 사람조차 지극히 드물었다. P대위의 요구를 김병장은 번번이 거절했다. 하지만 김병장은 모든 일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일처리가 분명했다. 게다가 인품도 남달라 계급 낮은 병사는 물론 고참병조차도 그를 존중했다. 그런 김병장이 P대위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P대위는 온갖 트집을 잡아 김병장을 괴롭혔다. 수시로 '얼차려'를 줬으며, 남들이 다 쉬는 추운 겨울밤에 홀로 완전군장을 한 채 연병장을 돌게도 했다. 하지만 김병장은 결코 P대위와 타협하지 않고, 늘 담담하게 버텨냈다.

마침내 김병장이 제대하는 날이 돌아왔다. 연대에서 제대할 사병들과 전역을 축하하러 온 부모들을 앞에 두고 연대장이 일장 훈시를 하던 중, 사단본부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갑자기 사단장이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단상 아래에 있던 P대위는 의전을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거침없이 지휘봉을 든 사단장이 불쑥 나타나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뒤쪽에 서 있었던 허름한 점퍼차림의 중년사내를 향해 달리듯 갔다. 그리곤 거수경례를 하더니 반갑게 포옹하는 것이었다. 제대하는 김병장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김병장의 아버지는 사단장과 동기인 육군본부 인사참모였던 것이다. 그 순간, P대위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자신이 그토록 괴롭혔던 김병장의 아버지가 바로 육군본부 인사참모였었다니 꿈엔들 알았겠는가.

후일담이지만, 김병장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군에 입대한다는 소식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제대하던 날, 아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사복차림으로 부대까지 왔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 소식을 알게 된 육군본부에서 슬쩍 사단으로 연락을 취했던 것이었다.

김병장이 제대한 후, P대위는 한동안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다. 아마도 김병장의 성품으로 보아, 단 한마디도 P대위의 비위사실을 아버지께 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풀에 못 이긴 P대위는 그해 겨울 시름시름 앓다가 병을 이유로 예편(豫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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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