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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오늘 낮에 친구들과 산성에 간다던 큰아이가 진달래꽃을 따왔다. 빈 물병에 차곡차곡 쟁여온 꽃잎을 풀어놓으며 제 엄마에게 빨리 찹쌀가루를 내놓으라고 성화다. 화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귀찮아하며 먹지도 않을 것에 시간 낭비한다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아이는 먹기보다 눈으로 감상할 거라며 엄마는 낭만을 모른다고 타박이다.

아내는 지극히 감성적인 사람이지만 집안일에 지쳐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일 테고, 요즘 아이답지 않게 자연의 멋을 즐기는 큰애의 말도 수긍이 가거니와 둘의 티격태격이 재미있기도 했다. 어쨌거나 큰애는 꽃잎보다 조금 더 크게 찹쌀 반죽을 앉히고 그 위에 꽃잎을 살짝 얹어 진달래 화전을 만들었다. 접시에 담아 사진까지 찍었다. 들기름에 살짝 구운 작고 동그란 화전은 그런대로 맛도 담백하니 괜찮다. 투덜대던 아내도 하나 맛보더니 슬몃 웃는다. 아이 덕분에 생각지 못하던 이 봄의 향기를 직접 음미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마당 샘터 옆에 작은 꽃밭을 가꾸셨다. 동글동글한 돌들이나 빈 병을 거꾸로 꽃아 화단의 경계석을 만들었다. 맨 앞쪽으로는 키 작은 채송화 그 다음으로는 봉숭아와 분꽃, 그 뒤로 모란꽃, 맨 뒤에는 제일 키 큰 해바라기가 집 안을 기웃거렸다.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동네의 많은 집들이 이렇게 화단을 가꾸었다. 모두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마음은 잃지 않고 살았다.

다산 정약용이 양계를 친다는 아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있다.

"양계란 참으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에도 품위 있는 것과 비천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가 있다.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있는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보아라. 또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보아야 하느니, 만약 이(利)만 보고 의(義)는 보지 못하며 가축을 기를 줄만 알지 그 취미는 모르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다산의 둘째 아들 정학유는 달마다 달라지는 농가의 풍속을 담은 '농가월령가'를 지어 남겼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항(閭巷)의 필부들이나 사대부들을 막론하고 생활의 운치를 즐길 줄 아는 심미안을 가졌다.

지난 제주 여행 때 점심을 먹었던 성산 일출봉 앞의 식당이 유달리 기억에 남아 있다. 한쪽 옆에 작은 유채꽃밭을 가꾸던 식당 '바다의 집'이었다. 주인과 아내, 딸 등이 운영하는데 주인장과 딸이 모두 등단한 시인이었다.

바다에다 시를 쓰는 글쟁이와/그 시를 주우러 바다로 나가는

시인의 아내가 살고 있다.//물결이 흩어놓은 시어들을

깅이발에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와서는//온갖 양념 바르고 기름에 튀겨낸다

친구가 찾아와 마주 앉아 바삭바삭 씹히는 소리에

신이 나서 시를 읊는 시인의 밝은 미소//사람 사는 소리가 난다/살맛이 난다.

주인장 강연옥 시인의 '시인의 아내'라는 시가 식당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시인의 아내가 바다에서 시를 주워와 끓여낸 보말성게미역국은 시원하고 달았다. 육지와 섬사람들, 옛날과 지금을 막론하고 우리네 사람들은 그렇게 생활의 멋으로 삶을 이루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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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