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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 26일 아침, 아파트 현관 앞에서 최인호 작가의 부고를 받았다. 새벽에 배달된 신문 1면에 등장한 그분의 죽음 앞에 지난 기억을 꺼내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고 회상에 잠겼다.

최인호 작가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2007년, 그의 책 '유림(2007년, 열림원)' 덕분에 이미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와 함께 공자가 태어난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곡부'와 맹자의 고향 '추성'을 4박5일 일정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의 첫 인상은 개구쟁이 소년 같았다. 생각보다 무척 작은 키에 놀라기도 했지만, 처음 만나는 누구든 스스럼없이 대했다. 반면 박완서 작가는 온화한 미소에 품위를 가진 할머니였다. 최인호 작가는 떠들썩한 반면 박완서 작가는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최작가는 청바지에 회색 니트를 입은 모습이었는데 아이처럼 천진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였음에도 소년처럼 활발했고 장난기도 넘쳤다. 그는 틈만 나면 쿠바 산(産) 시가(cigar)를 즐겨 피웠다. 시가를 담는 은색 케이스에는 보통 3개씩 들어 있었는데 그는 두터운 시가에 불을 붙여 조금씩 아껴 피웠다. 조금 피우다 재를 털고는 다시 케이스에 담아두었다 다시 피우고는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의 침샘암 발병도 필터가 없는 시가를 즐긴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자의 무덤과 자손들의 무덤이 있는 커다란 공림을 돌 때에 최인호 작가는 다리가 온전치 못한 박완서 선생을 업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편 대신 내가 업어주는 것"이라며 땀을 뻘뻘 흘리며 씩씩하게 다녔다. 그의 등에 업힌 박완서 작가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최인호 작가의 짓궂은 농담을 모두 받아넘기고 있었다.

"나도 기도를 보태겠습니다. 제 기도는 나보다 먼저 최인호를 데려가면 가만 안 있겠다는 하느님을 향한 으름장입니다. 나는 백 살까지 살 작정이니까 앞으로 이십년 이상은 내가 보장할게요."

2011년 작고한 고 박완서 작가가 최인호 작가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떠했는지 직접 지켜보았으니 박완서 작가의 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번은 버스 안에서 우리나라 국화(國花)에 대한 논쟁도 벌였다. 최인호 작가와 박완서 작가 모두 우리나라의 국화로는 지금의 '무궁화'보다는 '진달래'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최인호 작가는 나를 지칭해서 엉뚱하게 '행동대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아마도 일행 중에 가장 덩치가 좋았던 나의 첫 인상이 그러했나보다. 첫 번 만남부터 다시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나를 가리켜 이름대신 '행동대장'이라고 부르곤 했다. 함께 여행을 했던 한 신문기자가 최인호 작가에게 '당신이 출판한 책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선승 경허의 일대기를 그린 '길 없는 길(2008년, 여백)'을 말했다. 작은 체구의 최인호 작가는 여행 내내 나는 손도 대지 못하는 향신료 냄새 가득한 중국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그만큼 넉살도 좋았고, 입맛도 소탈했다.

한 시대의 문학을 풍미했던 최인호 작가와의 추억을 상기하며, 청주에서나마 '행동대장'이 그분의 영면(永眠)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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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