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 주말 소록도를 다녀왔다. 소록도로 가는 길은 멀었다. 5시간 만에 도착한 소록도 입구에서 투어 일행 한 명이 "여기는 너무 춥고, 멀어."라고 말했다. 거리도 멀었지만, 날이 몹시 추웠던 것이다. 멀리 소록도가 눈에 들어오자, 해무처럼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기억 저 편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바다처럼 새파란 간판에 새겨진 뿌연 흑백사진 한 장. 비록 천형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지만, 사랑은 그곳에도 있었다. 그렇게 태어난 자식들을 부모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미감아(未感兒)라고 불리던 자녀들과 한 달에 한번 도로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부모자식간의 만나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가슴 아픈 풍경이 또 어디 있을까.

'당신들의 천국'에서 주인공 조원장은 처음 소록도를 나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려했다. 그리고 헌신했다. 하지만 "당신은 나환자들을 한 인간이 아닌, 문둥병 환자로 대하고 시혜적 태도로 그들 위에 정신적으로 군림하여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는 병원과장의 일갈에 조원장은 소록도를 떠났다.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그들의 진정한 천국'은 훗날 병원 원장이 아닌 주민 신분으로 다시 돌아온 그에 의해 비로소 구현되었다.

소록도 병원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환자 촌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중앙공원이 있는 곳이다. 오른쪽 길 중앙에 놓여진 '외부인 출입금지'란 팻말이 철조망보다 엄정했다. 외부인들의 출입이 허락된 왼쪽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그대로 간직된 건물 두 채가 보인다. 검시소와 단종대다. 검시소는 시체를 해부하는 장소였고, 단종대는 한센병을 유전병으로 생각했던 일본인들이 강제로 그들의 정관수술을 자행했던 곳이다. 형틀에 묶인 채, 고통에 몸부림치던 환자의 절박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 절망의 장소를 넘어서면, 수려한 중앙공원이 펼쳐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토록 극명한 것일까. 지금 이곳을 수없이 넘나드는 한센인들의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봤다.

그때였다. 울창한 공원 수목들 사이로 한센인 한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모자로 반쯤 가린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손목은 뭉개져 소매로 감추었다. 말로만 듣던 한센인을 처음 목도했다. 난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들었다. 착각이었을까. 그때 그의 눈에서 한순간 섬광이 어렸다 스러지는 것은. 내밀한 분노 같았다. 그리고 이내 내 곁을 절뚝거리며 스쳐갔다.

이곳에 남아 있는 573명의 한센인들의 평균 연령이 73세다. 한센병의 감염률은 제로다. 한센병은 이제 이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하지만 과거 한센병을 앓았던 병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들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관광해설사는 "외부인이 소록도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한센인들은 자신들의 터전인 이곳에서 마음껏 산책하기도 힘든 실정"이라며 "소록도를 일반인에게 무턱대고 개방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과거처럼 통제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혹여, 이청준의 소설처럼 '당신들만의 천국'이 다시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