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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절기는 변함이 없어 아침 저녁 소슬한 기운이 감돌고 산야는 누릇누릇 가을색을 입어 간다. 맑은 햇살 창가에서 종이책을 넘기기 좋은 계절이다. 독서에 때가 있겠는가마는 가을볕은 천연의 조명과도 같이 편안해서 책을 읽는 정취가 남다른 것이다.

아내의 책상 위에 가을빛 닮은 표지의 '아버지의 오래된 숲'이란 제법 두툼한 책이 놓여 있어 펼쳐 보았다. 며칠을 두고 읽어 보니 '현대의 소로' '현대의 시튼'이라는 극찬을 받는 동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의 자전적 삶을 다룬 것이었다. 세계대전 중에서도 온 가족이 자연과 생물을 연구하는 생활을 놓치지 않았던 아주 경이로운 가족사를 담고 있었다. 현재 버몬트 주립대학교 동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아직도 메인주의 통나무집에 살고 있는, 다분히 외곬수다운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하인리히의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의 삶은 내가 유년시절 야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동물들이 은신하던 작은 굴과 수풀 속 보물처럼 놓여 있던 새둥지며, 미국 메인주의 자연과 충북 회인의 자연은 그 또래 소년들을 가슴 뛰게 하기에 충분한 낙원과도 같았던 것이다. 6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읽고 나니 생물들에 대한 박물적 지식은 물론이려니와 유년의 추억, 아버지의 마음, 자연에 대한 시정 등이 종합선물처럼 밀려들었다.

더구나 군데군데 아내가 끼워 말려 놓은 듯한 색 바랜 보라와 노랑의 들꽃들이 책을 수놓듯 누워 있어 시종 미소를 머금고 책을 읽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도 아직 여고생 같은 아내의 감수성이 새삼 애틋하고 가슴이 짠했다. 또한 아내가 읽던 페이지에 책갈피가 꽂혀 있었는데, 작은 꽃잎을 말려 만든 것으로 '2012 봄, 보은의 들꽃'이라 적혀 있었다. 아내가 웃으며 지난 봄 야외체험학습 나갔던 아이가 들꽃을 한 주먹 꺾어 와서 건네주더란 이야기를 한다. 그냥 버릴 수 없어 책 속에 갈피갈피 넣어 말렸다가 만들어 주변 선생님들에게 나누어 드렸노라고…….

한 권의 책이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내포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제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상투적이라 하더라도 책읽기의 필요성을 자꾸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 장편소설 아니에요?"

학교에서 국어 교과서에 실린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두고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휴대폰 문자메시지, 트위터 글, 인터넷 댓글 등 온통 짧은 글에만 익숙한 아이들인지라 두세 장이 넘어가는 내용의 글은 장문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독서'를 체계화한 교육과정이 왜 실행되지 않는 지 의문이다. 입시를 위한 교과 위주의 교육 과정 말고 인성과 깊은 사고력, 삶에 대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독서 교육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흉내내기에 그치는 입시용 논술 독서가 아닌, 진정한 책읽기를 아이들에게 습관화해 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1929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시카고대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교육학자 허친스의 '인문고전 100선 읽기' '시카고 플랜'처럼 교육자들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요즘 아이들을 책갈피로 데려와야 될 사명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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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