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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어릴 때 비오는 한여름 밤, 산 아래 과수원 원두막에서 듣는 처녀 귀신 이야기는 정말로 무서웠다. 참외과수원을 지키느라 할아버지의 특명을 받고 방학 때 내려온 사촌들과 밤늦게 원두막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어떤 놀이보다 즐겁고 신이 났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서 덮칠 것 같은 어둠 속의 뒷산과 그 산이 품고 있는 많은 무덤들, 어딘가로부터 들려오는 이상하고 낯설게 수런거리는 소리들…. 그 모든 것을 배경삼아 으레 서로가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너도나도 꺼내놓는 것으로 여름밤은 깊어만 갔다. 뭐니뭐니해도 원한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이 제일 무서웠고, 몇 번 재주를 넘어 사람으로 변한다는 여우, 깊은 산길에서 사람을 따라온다는 도깨비, 화장실에서 굴러다닌다는 달걀귀신 등 온갖 무서운 것들이 등장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은 몸을 옹송그리며 서로 바짝 붙어 앉았다. 둘러앉은 아이들 모두 이야기 한 순배가 돌고나면 결국 무서운 이야기의 배경은 학교로 옮겨갔다.

학교 복도를 걸어 다니는 무언가가 있다더라, 학교 변소에서 볼일을 보다 보면 밑에서 하얀 손이 쑥 올라온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요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게임에 빠져 사는 어느 중학생 아이가 무서운 이야기의 주제로 쓴 한 줄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게임을 하고 있는데 앞의 거울 속으로 화난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얼마 전 '게임하는 뇌, 학습하는 뇌'란 주제의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다. 각종 미디어에 붙잡혀 사는 요즘 아이들의 현실적 지각 능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심지어 유모차 앞부분에 '스마트폰 거치대'까지 등장했다니, 유모차를 타는 아기들조차 스마트폰을 보며 길거리를 다닌다는 것이 아닌가. 이웃에 어린아이를 키우는 어느 집은 아이가 동화책을 보며 자꾸 책장에 대고 손가락을 벌리는 시늉을 하더란다. 알고 보니 스마트폰 화면에서 동화책을 보던 버릇이 무의식중에 드러난 것이다.

강연에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뇌, 만화책을 보고 있는 뇌, 일반 책을 보고 있는 뇌를 영상 촬영한 자료를 보니 책을 보고 있는 뇌세포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만화책이 미미한 수준이었고 단순히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는 뇌의 기능이 거의 멈춰 있었다. 특히 게임을 하고 있을 때는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이 거의 정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실적 판단력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게임한다고 나무라는 엄마를 살해하는 고교생이 생기고, 게임에 빠져 아기를 굶겨 죽이는 젊은 엄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학창시절에도 학교 폭력은 존재했다. 하지만 요즘의 학교폭력처럼 잔인하고 집요하게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성적 폭력이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게임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중고생들이 즐겨하는 선정적이고 잔인한 게임의 영향을 어떻게 무시할 수 없다. 게임한다고 나무라는 엄마의 얼굴이 가장 무서운 이야기라니 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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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