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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초원에 불이 났다. 짐승들이 일제히 도망쳤다. 그런데 벌새 한 마리가 겁도 없이 진화에 나섰다. 왜 벌새인가? 벌새는 새 중에서도 가장 작다. 크기가 벌만해서 벌새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벌새는 그 조그만 입으로 강물을 물고 와서 초원을 태우는 불길 위에 끼얹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 짓을 반복했다. 큰 짐승들, 가령 사자나 코끼리나 얼룩말 같은 짐승들이 벌새를 비웃었다.

"야, 그런다고 네가 불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니?"

그러자 벌새가 대답했다.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이 우화는 '슬로 라이프(Slow Life)'의 저자로 유명한 쓰지 신이치교수의 책에 실려 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이었다. 따뜻한 커피가 한잔 그리웠다. 지난 해, 12월 충북대 후문 앞에 문을 연 '춤추는 북 카페'가 생각났다. 그 당시 지인으로부터 초청장이 왔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늘 빚진 느낌이었다. 카페 문을 열자, 향긋한 커피 향이 밀려들었다. 비록 어눌한 말투였지만, 밝고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종업원 덕분에 기분이 한결 밝아졌다. 종업원의 대다수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었다. 직접 커피를 갈고, 탬핑하며 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능숙하게 뽑아냈다.

"무얼 드…드시겠어요?"

"커피 라떼 한 잔 부탁해요."

주문을 받은 장애소녀는 마치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이 신이 나서 카운터로 달려간다.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웠지만, 분명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김대표가 컨퍼런스 룸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는 알은 채 하며 다가섰다. 그는 대화 도중에도 아이들과 연신 눈을 마주치며 일일이 참견하고 말을 받아주었다.

"20년 전, 장애아동들의 언어치료를 했는데, 그 아이들이 성장해 어른이 되었지만 결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더라고. 그래서 '춤추는 북 카페'를 생각했어."

장애아가 홀로 사회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같은 처지의 장애인끼리 집단 공동체에서 단순노동을 하며 산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라 홀로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은 포기한지 오래다. 다만, 자신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누군가가 보살펴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창밖으로 봄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장애 청소년들이 책을 나르고 정리하는 풍경이 느린 화면처럼 펼쳐진다. 두 개의 컨퍼런스 룸에서는 아줌마들이 커피를 마시며 한창 수다를 떨고 있다. 탁자에서는 대학생들이 노트북을 켜놓고 리포트 작성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공간에 어울려 멋진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풍경이 커피처럼 따뜻했다.

"잠들어 있는 책을 기부 받아 누군가가 다시 읽으니 책이 생명을 얻고, 그 수익으로 장애아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생기니 함께 춤을 추는 셈이지."

우화에서 등장한 벌새가 '나로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라는 말처럼 '춤추는 북카페'는 운명처럼 상생(相生)의 물을 긷고 있었다. 그쯤해서 나는 우리 집 책꽂이에 잠들어 있는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가만히 헤아려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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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