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요즘 며칠간은 바짝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맹추위와 더불어 번쩍 정신이 들게 느끼는 것은 둘러보는 자연의 풍광에 색(色)의 선연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산과 들판과 그리고 가로수들은 마지막 낙엽의 향연을 치르고 제 몸 안으로 색채를 거두어 들였다. 그리하여 회색빛, 갈빛, 짙은 잿빛의 우수어린 맨몸의 얼굴로 겨울을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청춘의 시절에는 이러한 겨울 풍경이 삭막하고 황량하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겨울의 풍광이 차츰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선 겨울나무의 재발견이다. 잎사귀를 다 떨구어버린 나무 본연의 골격미는 새삼 발견하는 아름다움이었다.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명정한 겨울 하늘에 섬세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세밀화였다. 실핏줄처럼 촘촘하게 나무의 몸을 이루는 나뭇가지들의 섬세함은 나뭇잎이 없어도 나무가 얼마나 풍요로운 자연물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황지우 시인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의 첫 구절처럼 나무의 첫 몸은 잎사귀 없는 가지들로 시작된다. 가지들이 나무의 몸을 이루며 허공의 빈 공간을 구성하는 조형미는 한 폭의 수묵화로 손색이 없다. 어쩌면 자연의 누드화 같기도 하다. 일체의 입성을 벗어버린 사람의 몸처럼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겨울나무들의 모습은 고백의 풍경으로 보인다. 봄, 여름, 가을, 고단하게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다가올 새봄에 앞서 자신을 겸허히 추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생동하며 화려했던 계절들 속에서 나 이렇게 살았노라고, 이것이 감춰져 있던 내 본연의 모습이었노라고, 겨울나무는 모든 계절들의 삶을 고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겨울나무는 허식과 수식의 삶을 벗어버리고 가장 진솔한 얼굴로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절친한 벗처럼 애틋하고 친근하다.

며칠 전에는 겨울사냥 취재를 다녀오다 그야말로 색다른 감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어느 집 뒤뜰에 서 있던 그 감나무는 빈 가지들에 거의 무채색으로 말라버린 감들을 잔뜩 매달고 있었다. 농촌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가지 꼭대기에 까치밥으로 몇 개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래가지부터 위까지 참으로 풍요했던 다산의 열매들이 모두 원형 그대로 말라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 나무가 뒤뜰에서 품고 있는 집은 빈집이었다. 마을과 외따로 떨어져 있기도 하고 요즘같이 먹거리가 풍부하다 보니 감 열매 따위야 오가는 길손의 손도 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한창 가을에는 주홍으로 환한 등불처럼 켜져 있었을 감나무가 이제는 떠나버린 주인대신 빈집을 지키며 삭풍 속에 꿋꿋이 서 있는 모습은 고향의 할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 나무에서 그대로 말라버린 감들은 어린 손자가 잠들며 더듬던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젖가슴을 연상케도 하여서 가슴이 아려왔다. 그처럼 달고 환한 열매를 품고 기다렸는데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던 고적한 시간들이 그 겨울 감나무에 고여 있었다.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한 나무의 고독함이 가슴에 사무쳐 왔다.

겨울나무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때로는 거기에 얹힌 인간 삶의 모습까지도 더불어 보여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 감나무였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