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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니 엄마, 그 차림으로 나갔다 온 거야? 안 추워?"

"뭘, 잠깐 나갔다 왔는데…"

"엄마, 안 뜨거워?"

"괜찮아. 냄비 어디다 놓을까?"

엊그제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한국에서 '아줌마'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 3의 성'으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소개한다는 내용처럼 나이든 어머니들의 독특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코너다. 하지만 '어머니'를 주제로 해서인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찡한 여운을 남길 때가 많다. 지난 방송도 그랬다. 어머니는 한겨울 반바지 차림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거나 뜨거운 냄비 손잡이를 아무렇지 않게 번쩍번쩍 든다. 이 장면에 뒤이어 나온 사회자의 멘트는 이랬다. "대체 어머니들은 모든 일에 왜 이렇게 무덤덤한 걸까요? 감정이나 감각이 사라진 걸까요?"

어머니가 무덤덤하고 무감각하다고? 아무리 코미디 프로라지만 버럭 호통을 치고 싶었다. '어머니'라는 존재에서 내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제는 올해 나이 50에 이른 아내까지 같이 떠올리게 된 나로서는 '새침한 아가씨'가 어떻게 '강인한 모성의 어머니'가 되어가는지 그 생생한 과정을 지켜 보았기에 세상 모든 어머니들, 즉 나이든 아줌마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이 너무도 창피한 적이 많았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라면 아마도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 여탕을 다니거나 시장에서 한 푼이라도 깎으려 목소리를 높이는 엄마가 창피해서, 시외버스 매표소에서 아직 '국민학교'도 안 들어갔다고 우겨대는 엄마-다른 사람 자리를 공짜로 얻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당신 무릎에 앉히면 된다는 절약 정신의 발로-곁에서 온몸이 죄인처럼 쪼그라드는 경험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 어머니가 물건 값 같은 것에는 연연하지 않은 채, 언제나 거실 한 켠에 생화를 꽂아 두고 고상한 생활의 품격을 즐기는 여인이었다면 아버지 혼자만의 빠듯한 월급으로 우리 4남매가 모두 대학을 마칠 수 있었을까. 형수님이 결혼 전, 처음 어머니에게 인사오던 날에서야 나는 어머니가 장미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형수님이 사온 붉은 장미 한 다발이 다 시들고 마르도록 어머니는 그 꽃을 버리지 못하시고 벽 한 쪽에 걸어 두셨다.

어머니들은 결코 무덤덤하거나 무감각하지 않다. 다만 식구들의 뒷바라지로 고되게 단련되었을 뿐이다. 비단 내 가족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집 밖을 나서면 사회 곳곳의 허드렛일은 모두 4~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시장의 좌판에서, 대형마트에서, 노인요양병원에서, 화려한 빌딩의 화장실에서 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한 집안에서는 어느 자식들의 어머니인 그 '아줌마'들이 인간적 감정이나 감각을 못 느끼는 무덤덤한 군상들이어서가 아니다. 아직 취업 못한 자식들을 위해, 퇴직을 앞둔 남편을 위해, 또는 아무 대가 없이 무조건적인 봉사 그 자체를 위해, 내 한 몸 아끼지 않고 고통을 초월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신적인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이 사회에 강림한 진정한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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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