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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이제 얼마 있으면 곧 겨울방학이다. 한참 공부해야 할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두 가지 고민이 생긴다. 먼저 어떻게 하면 겨울방학을 통해 부족했던 공부를 보충해볼까 하는 생각과 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는 아이들과 씨름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을 때 중2 막내가"아빠, 이번에 방학하면 우리는 어디 안 가요? 친구들은 다들 친척집에 다녀온다고 하던데…"라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친척들과 왕래를 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아득할 정도로 무심하게 살아왔다.

내 어린 시절의 방학은 어김없이 시골 할아버지 댁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친척집 순례가 의례적인 코스였다. 요즈음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적다. 굳이 핑계를 대면 할아버지 집은 물론이고 형제들의 집이 다 같은 청주다 보니 특별하게 날을 잡아 방문하기도 애매하다. 적어도 친척집에 갈려면 멀리 버스라도 타고 떠나는 여행의 맛도 슬쩍 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조부모님은 방학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자들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형제는 여름이면 시골의 아이들과 계곡물에서 하루 종일 놀았고, 겨울이면 논두렁에서 썰매를 타고 연을 날리며 보냈다. 처음 며칠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집이 그리워졌다. 방학이 되기 전에는 시골로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시골에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일은 우리 형제가 시골을 떠나기 전 날은 늘 비슷한 풍경이 항상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우리들이 떠나기 전날, 할아버지는 언제나 십리나 되는 읍내로 나가서 생선과 고기를 사가지고 늦은 저녁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뻔한 레퍼토리는 할머니와의 티격태격 말싸움이었다.

"허구한 날 술타령이야, 이 늙은 영감탱이야!"

"읍내에 갔으면 술이라도 먹어야지, 맨 정신으로 오랴?"

그때 우리 형제들은 우리들이 청주로 돌아가기 전날 조부모님이 매번 그렇게 싸우시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시골에 머물렀던 동안 가장 푸짐한 저녁 성찬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다툼이 뒤섞여 저녁의 시간은 새벽으로 흘렀다. 그리고 먼동이 터오자마자 마음이 들떠 있던 형제들은 일찍부터 마당으로 나섰다.

"이 녀석들아, 집으로 가는 게 그렇게 좋으냐. 첫 차 오려면 아직도 멀었어."라며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셨다. 우리는 차가 오는 동네어귀로 내달렸고, 할아버지는 청주로 보낼 짐을 지게에 잔뜩 메고 천천히 따라오셨다.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타고 맨 뒤쪽 좌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뭉클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우리들이 탄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빈 지게를 진 채 하염없이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풍경이었다.

그리하여 지나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젖어들면, 지난 밤 괜히 할아버지께 말싸움을 청한 할머니도, 술에 취해 들어오신 할아버지의 마음도, 한 달 동안 정든 손자들을 보내기 싫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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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