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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어렸을 때 덮고 자던 조각보 이불이 있다. 할머니 댁에 있던 것이었다. 이맘때쯤 날씨가 쌀쌀해져서 이불 안에 남아 있는 내 체온이 못내 아쉬워 이불 속에서 밍기적거리는 때가 되면 할머니께서 꺼내곤 하시던 이불이었다. 다양한 무늬의 천 조각들로 누빈 그 이불보는 많은 이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 것이었다. 음전한 고모의 원피스, 고무줄놀이로 나풀거리던 누이의 치마, 동네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동생의 반바지…….

해진 옷들의 성한 부분들을 잘라서 이불을 만드시던 할머니의 손길처럼 이즈음의 퀼트도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바느질을 해야 포근하고 정겨운 모습이 여러 가지 형태로 살아난다. 옷, 이불, 가방, 인형 등 퀼트로 만든 것은 매만진 이의 손길 때문인지 돈으로 살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우러난다. 아내에게도 모양과 색깔이 다른 퀼트 가방이 여러 개 있다. 물론 아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아내는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데는 영 솜씨가 없다. 심지어 떨어진 단추와 반짇고리를 들고 멋쩍은 웃음을 머금으며 내게로 올 때가 많다. 그런 아내가 퀼트 가방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제수씨 덕분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제수씨는 음악 뿐 아니라 실생활의 향기도 연주해내는 솜씨를 지녔다. 제수씨는 얼마 전 퀼트 동호회에서 주관하는 전시회에 참여하여 시립정보도서관의 전시실에 이불과 가방 등의 작품을 이웃 주민들에게 선보였다.

전시회에 다녀온 아내는 분홍과 크림색이 조화를 이룬 새로운 퀼트 가방을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

"그동안 선물만 받다가 오늘은 정식으로 사가지고 왔어요. 재료비라도 보태 쓰라고……어쩌면 이렇게 바느질을 잘 할까."

못내 흐뭇한 표정으로 쓰다듬곤 하더니 그제 서울에서 있었던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메고 다녀왔다. 서울에서도 부촌이라는 압구정동의 결혼식장에서 치러졌던 혼례라 바로 인근에 있던 압구정 현대백화점에도 들렀던 모양이었다.

"웬 명품관이 그렇게나 많은지. 1, 2층이 모두 명품 가방들로 가득하더라고요. 멋진 가죽 가방들이 즐비한데 난 그래도 이만 못하더라."

명품 하나 사주지 못하는 남편의 기를 세워주려는 것인지 슬쩍 아내의 얼굴을 살피는데, 퀼트 가방을 만지는 아내의 눈에는 정말이지 명품 가방을 동경하는 빛은 담겨 있지 않았다.

깊은 밤의 홀로 있는 그윽한 시간이거나 공부하는 아이 옆에서, 때로는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는 식구들 곁에서 이리저리 천을 고르고 자근자근 바느질을 한 이의 손길이 소위'명품'아니겠는가. 그 희소성으로 본다면야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제품일 터이므로 명품 중의 명품이라 할 것이다.

'아메리칸 퀼트'라는 영화가 있다. 결혼을 앞두고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방황하는 손녀에게 할머니와 그 친구들은 퀼트 모임을 주선한다. 손녀에게 자신들 삶의 편린들을 들려주면서 각자 추억의 조각들을 바느질하여 주인공에게'웨딩 퀼트'를 선사한다. 그 퀼트 이불에는 삶의 행복 뿐 아니라 고통까지도 정교한 무늬로 함께 짜여 져 있음을 깨닫고 주인공은 새로운 삶을 열어갈 용기를 얻는다.

아내 또한 제수씨가 만들어준 퀼트 가방을 그토록 좋아하는 것도 가방의 결마다 삶의 위안이 되는 따스함을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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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