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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지난 주말, 대청호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우은정 화가의 '바람의 곁에 바람으로 서서' 전시회가 있었지요. 그림을 보다 사람을 만났고 뜻밖의 바람도 만나 한껏 흥이 났습니다. 제1관 '팔선녀 성진을 희롱하다'를 거쳐 2관 '신선이 사는 마을'과 3관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에 바람을 드로잉 함'을 보고 나니, 내 안의 무언가가 씻겨 나간 느낌이었습니다. 미술관을 나설 때, 배웅 나온 화가가 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대청호를 바라보며 말해주었습니다.

"눈을 감고 바람의 결을 느껴보세요. 바람이 수평으로 오니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바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니요. 그래서 눈을 감았어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미세한 바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때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에서 시청각 중복 장애인인 영찬씨가 했던 말이 둥둥 마음을 울리네요. "나무도 눈과 귀가 없으니 온 몸으로 바람을 느끼는 것이죠. 나는 지금 가장 값진 것을 보고 듣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는 중입니다."라고요. 하긴 우리 삶도 '잠시'일 수 있겠네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한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바람은 내가 손을 내미니 비로소 친구처럼 다가오네요. 세상에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닫으니 온몸으로 바람을 맞이할 수 있었나봅니다.

화가는 틈나는 대로 밤의 산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그냥 걷기에는 멀고 험한 길이더군요. 무려 100(40km)리를 걷는다니, 쉬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속리산 문장대를 중심으로 반경 100리를 둥글게 그려 상주와 보은 주변을 밤새워 걷곤 한답니다. 화가는 "바람은 계절마다 모습을 다르게 하고, 높이마다 느낌이 달라요. 기온의 편차에 바람은 또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거든요."라고 말합니다. 10년 넘게 밤길을 걷으며 깨달은 영감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니 그의 바람은 참 각별했습니다.

"바람은 어머니처럼 생명의 생성과 소멸에 관여합니다. 나무의 과실을 떨어뜨려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게 만듭니다. 바람은 모래를 쌓아 산을 만들기도 하고, 산을 무너뜨려 들을 만들기도 하지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컬럼비아대 로버트 서먼교수가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과 산문에서 행복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지요. 로버트 서먼 교수는 "한국의 반가사유상을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포즈는 닮았지만, 표정은 대조적입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이 많고 복잡한 표정이지만, 반가사유상은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이죠."라고 말하더군요. 그 차이는 반가사유상은 생각을 비우고 있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을 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바람을 담은 화가의 화폭에는 밤에 펼쳐지는 자연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혼곤히 잠든 시간, 깊은 자연이 준 깨달음을 화폭에 옮겨 담으니 보는 이를 저절로 편하게 만들더군요. 생각을 비우니, 비워진 공간에 자연(自然)이 저절로 차오르는 이치겠지요. 그래서일까요. 한국의 반가사유상과 화가의 그림은 절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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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