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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새벽이 오려면 아직도 먼 밤의 여정이다. 식구들이 고단한 낮의 삶에 지쳐 혼곤한 잠에 빠져 있다. 밤은 시간이 한순간 정지되고 고여 있는 느낌을 준다. 가정을 이루고, 사회라는 곤고한 틀 속에 살아오다 이렇게 텅 빈 고독과 불현듯 맞닥뜨리면 '외롭다'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독거노인들에게 텔레비전은 가장 친한 친구다. 버튼 하나면, 화면 속에 따뜻한 가족이 있고 즐거운 웃음이 낭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사람들의 소리로 떠들썩하다. 반면 텔레비전 너머 현실의 독거 방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튼다.

나도, 외로워 텔레비전을 켰다. 혹여나 텔레비전의 빛과 소리로 식구들의 달콤한 잠을 훼방 놓을까 두려워 조심조심 방문을 모두 닫은 후, 거실 소파에 앉아 볼륨을 최대한 줄이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았다. 그런데 우연히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마지막 암사자'란 프로그램을 보다 뜻밖의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무리와 떨어져 홀로 사는 암사자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장기간 자신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서서히 접근해 가는 것이었다. 새끼 사자부터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경우라면 이해가 되겠지만, 야생의 사자가 스스로 사람에게 다가가 배를 드러내고 친근감을 표시하는 모습에 묘한 감정의 너울이 일렁였다. 깊은 밤중 갑자기 TV를 켠 나의 심정과 상통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캠코더 촬영기사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에게 호감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배를 보이고 뒹굴면서 순종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무리에서 이탈한 '백수의 왕'인 사자도 외로워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호승시인도 시 '수선화에게'에서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외로워 너를 보고 있고,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며, 심지어 산 그림자조차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며칠 전에 취재차 만난 홍순이(87, 운천동)할머니도 지독하게 텔레비전을 좋아했다. 원인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20년째 홀로 사는 소위 '독거노인'이다. 99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아 연명했다. 낮에는 폐품과 종이상자, 폐지를 모아 팔아 하루 2천 원씩 벌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매일 심심하고 외로워서 텔레비전만 끼고 살다, 사람을 만났어."라며 "자원봉사자들인데 수시로 전화를 걸어주고, 반찬도 갖다 주며 목욕까지 시켜줬어. 평생 나만 알고 살다가 나누는 법을 그이들한테 배웠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작년 12월에는 무려 10만원의 거금(·)을 적십자회비로 선뜻 납부했다. 할머니는 "누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며 "매년 조금씩이라도 모아 그렇게 해보려고. 그 사람들 덕분이야. 텔레비전만 보면 매일 유령하고 사는 것 같았지 뭐."라며 말했다. 할머니는 취재를 온 내게 "커피는 펄펄 끓여야 제 맛이 나."라며 손수 커피를 끓여 냈다. 뜨거운 커피가 목젖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드니 온 몸이 훈훈해졌다.

너무 늦은 밤이었지만, 뜨거운 커피 한 잔이 그때처럼 그리웠다. 주방으로 가려 일어나다 보니 그새 아파트 앞 성당의 불빛이 환하다. 새벽미사 시간이 다 되었나보다. 누군가를 위해 고요히 기도드리는 묵상의 시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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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