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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구불구불 길을 내려오다, 문득 고개 드니 오색 단풍이 선연히 눈에 든다. 어린아이 손을 닮은 붉은 단풍 사이로 오래된 사찰이 보였다. 반가웠다. 오랜만의 산행인지라 충분히 물도 챙겨두었지만, 산을 오르내리면서 만나는 이름 모를 사찰의 약수 한 모금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요사채로 난 샛길로 접어들자, 너른 대웅전이 나타난다. 그때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 줄로 길게 열을 맞춰 뒤뚱거리며 가고 있는 닭들의 모습이었다. 시골마당이 아닌, 스님들만 사는 절에서 고만고만한 닭들의 행렬이라니……어쩐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절간에 웬 닭들?"

일행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몇몇 등산객들은 묘한 웃음마저 흘리며 뜰에 있는 약수로 향했다. 그때 마침 스님 한 분이 다가오자 이참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스님, 저 닭들은 절에서 키우는 것인가요?"

질문을 받은 스님, 대답 대신 미소를 짓는다.

"절에 닭을 키우니 그런 질문을 수없이 받아요. 육식을 금하는 스님들이 무슨 이유로 닭을 키우나 궁금하신 거지요."

스님은 툇마루에 앉아 닭을 키우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지난 가을이었다. 한 달 동안 감기로 시름시름 앓던 스님을 안쓰럽게 여겼던 한 신도가 달걀 한 꾸러미를 선물했다.

"스님, 집에서 기른 닭이 낳은 달걀입니다. 아무리 살생을 금한다고는 하지만, 스님 몸도 생각하셔야지요. 달걀은 아직 생명이라 볼 수 없으니 드시고 빨리 쾌차하세요."

얼떨결에 달걀을 받아든 스님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생명이 되기 전의 것이라고 하지만,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옷장 깊숙이 보관하고 있다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되돌려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다 그만 옷장에 넣어둔 달걀을 스님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이 오는 어느 날이었다. 방안에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병아리 울음소리 같았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옷장을 열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신도가 선물한 달걀이 부화를 해서 병아리가 된 것이었다. 노란 병아리들이 옷장에서 튀어 나와 스님 주변으로 몰려왔다. 스님을 어미 닭으로 알고 배고프다며 연신 '삐악삐악'거리며 입을 벌려댔다.

"참, 세상의 인연이란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 일행이 절에서 마주친 닭들은 그때의 병아리가 성장해 닭이 되어버린 것이다. 엉뚱한 상상을 했던 우리들은 스님의 사연을 듣고 생명의 신비와 놀라운 인연 앞에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하산하는 내내, 스님이 화두처럼 들려준 말이 귀전에 맴돌았다.

"장작 두 개를 비벼서 불을 피웠다면 불은 어디서 왔는지요. 공기 중에서 왔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신(神)이 불을 만들어 주었을까요. 다만 공기와 장작과 우리들의 의지가 연(緣)이 되어 잠시 불이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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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