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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시장에 대한 첫 기억은 아련하면서도 쓰라리다. 오일장이 서던 시골 장날이었다. 늦여름의 햇살이 감나무 잎 사이로 찬연하던 아침, 할머니는 과수원에서 갓 따온 복숭아를 함지박 가득 담아 이고 읍내 장터로 향하셨다. 예닐곱 살 어린 나는 할머니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을 쳤다. 이 많은 복숭아를 팔러 간다는 사실이 사뭇 가슴을 부풀게 했다. 그때까지 나는 집안 어른들이 시장에서 무얼 파는 걸 본 적이 없는 터라 뭔가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할머니는 시장 한 귀퉁이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처음의 기대도 잠시 이내 지루하고 지치기 시작했다. 가지고 놀 것은 없고 심심하니 애꿎은 복숭아만 자꾸 물어뜯었다. 할머니께 꾸중을 들으면서도 장난감은 복숭아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쳐 갔다. 값을 물어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도록 복숭아는 그다지 줄지 않았다. 축 처진 어깨로 할머니는 다시 복숭아 함지박을 머리에 이셨다. 시무룩해진 나는 시장 한 켠 좌판에 놓여 있던 사탕과 과자가 못내 서운했다. 시냇물의 돌다리를 건너기 직전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기어이 할머니 치마꼬리를 흔들고 말았다. 다리를 건너면 읍내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할머니이~ 과아자~"

"어이구. 진작 얘기헐 것이지"

다시 읍내까지 가서 산 사탕을 입에 우물거리며 되돌아오던 귀가길, 할머니의 얼굴이 시름깊다 싶으면서도 사탕은 달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때문인지 할머니들이 앉아서 무언가를 파시는 재래시장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특히 이맘때면 대형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능이나 싸리버섯, 산밤이나 토종 밤, 조선호박과 호박잎 등을 살 수 있기에 자주 시장을 들르곤 한다.

며칠 전에도 가보니 예상대로 주변 텃밭이나 산에서 직접 채취한 가을철의 수확물들이 시장 구석구석을 소담지게 만들고 있다. 그리 크진 않지만 동글동글하면서도 야무져 보이는 토종밤도 많이 나와 있다. 한 됫박에 4, 5천원 정도의 값을 부른다. 구경삼아 이리저리 거닐다가 밤과 조선호박만을 놓고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신 곳으로 갔다. 밤을 담아 놓은 그릇을 보니 지금까지 내가 본 됫박보다 두 배는 크다. 가격을 물어보았다. 2천원이라고 하신다. 나는 6천원을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재차 여쭈었더니 2천원이라고 하며 이렇게 덧붙이신다.

"그냥 내가 주워온 거니께 싸게 파는겨. 호박도 천 원만 줘. 그냥 우리 집에 달린 거 따온 겨."

할머니의 말씀은 냉혹한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계셨다. 그냥이라니. 허리 굽혀 주운 노고와 봄부터 씨앗 뿌려 가꾼 인건비는 어쩌시고…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손에 넣는 많은 물건들의 제조와 유통 과정이 어떤 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소외 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와 감사를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한다."

곧 추석이다. 재래시장에 가 보라. 수많은 경이와 감사를 느낄 기회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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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