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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우리 동네 중학교에 작은 테니스장이 하나 있다. 이곳에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회원들이 테니스를 즐긴다. 오후반이 주로 젊은 직장인들이라면, 새벽반은 모두 정년퇴직을 한 노인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난 L회원과의 인연으로 오전반 회원으로 등록했다.

필자를 제외하면 가장 나이가 적은 회원이 68세이고, 최고령자가 무려 83세다. 현재는 모두 은퇴했지만 구성원의 직업도 대학교수, 학교장, 교사, 공무원, 시의원까지 다양하다. 이분들이 오랫동안 꾸준히 익힌 테니스 실력은 젊은이 못지않게 출중하다. 공을 칠 때면 활기차고 역동적인 모습이 나이마저 의심하게 된다. 초보인 나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그분들의 노련미에 늘 지청구 먹기가 일쑤다.

그런데 이곳 테니스 모임에서는 금기 사항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이념)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는 일이다. 테니스 코트가 하나다 보니 경기하는 당사자 4명을 제외한 6~8명은 대기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사단은 늘 이곳에서 생긴다. 코트에서는 테니스 경기를 하고 있지만, 벤치에서는 '보수와 진보' 두 팀으로 갈려 또 다른 입씨름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보수를 고집하는 팀에서는 진보진영을 '빨갱이'라 규정짓고, 진보를 자처하는 팀에서는 보수진영을 '의식 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의견대립은 극에 달했다. 한쪽에서는 '천안함 사건은 음모'라 했고, 반대쪽에서는 그런 주장을 하려면 '모두 북한에 가서 살라'고 몰아댔다. 결론은 누구의 승리도 없는 소모전이었다. 치열한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무렵, 그분들은 가장 '어린' 내게 슬쩍 '어떻게 생각해?'라고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듯 의견을 구한다. 난처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민 끝에 나는 "모든 분들이 다 손자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라고 동문서답했다.

12명 회원은 각자의 외모도 생각도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바로 아들도 아닌, 손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다. 난 그분들의 약점을 잘 안다. 나의 아버지 또한 나보다 내 아들을 더 끔찍하게 생각하시므로, 손자라면 무조건 한 수 접어주는 그 분들의 특성을 여우처럼 잘 안다. '손자'라는 말만 하면 그만 껌뻑 죽는 이 시대 할아버지의 특성을 파고들면 아무도 이길 장사가 없다. 손자라는 '사랑스런 존재' 앞에서는 이념도 정치도 심지어 평생의 내 고집조차도 눈처럼 녹아드니까.

평생 취미로 테니스가 유일하다는 J회원이 딱 한 게임만 끝내고 아쉽지만 정신없이 짐을 챙기는 이유는 바로 손녀의 등교를 위해서다. 하루도 어김없이 새벽마다 테니스 코트를 정리하는 L회원이 몇날 며칠 빠지는 경우는 강원도에 있는 손자, 손녀를 돌보기 위해 청주를 비운 까닭이다.

서로 다른 생각의 논쟁으로 냉랭하던 분위기도 경기를 끝내고 기울이는 막걸리 한잔이면, 씻은 듯 가신다. 막걸리 안주로 곁들여지는 '손자, 손녀' 이야기가 이념과 대립을 순식간에 함몰시키고 마는 것이다. '손자, 손녀'라는 마법의 언어 앞에 이분들은 어느새 따스한 눈망울로 돌아가 서로를 격려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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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