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이즈음의 절기는 안복의 호사가 극치를 이루게 한다. 먼 산의 난만한 봄빛도 절정이거니와 가까운 공원이나 아파트 주변만 해도 꽃사태가 아롱졌다. 다투어 피는 꽃들과 연연한 신록들이 바야흐로 한데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연주해내고 있다. 명수필가 금아 피천득 선생은 아흔 즈음하여 "내 생전에 몇 번의 봄을 더 볼 수 있으려나"하고 계절 중에서도 유난히 아름다운 봄을 찬미하였다.

봄은 산 사람뿐 아니라 고인의 죽음마저 젊어지게 한다. 누렇던 봉분이 푸르게 변하는 것을 보면 돌아가신 분이 새 옷을 갈아입는 듯하다.

지난 토요일, 조부모님 모신 곳의 사초(莎草) 작업으로 인해 고향을 다녀왔다. 내 고향은 청주에서 피반령 고개 너머 있는 회인이다. 피반령 주변의 산세와 더불어 다채로운 산벚꽃빛과 유록빛 잎사귀의 향연은 운전하는 손길을 자꾸 멈추게 만들었다. 비록 금강산이 아니라도 산이 뿜어내는 봄빛은 곳곳마다 절창이었다. 산소가 있는 곳을 오르니 씻어 건진 것 같은 나무 잎사귀들이 이마를 스치며 그 생동하는 기운이 온몸에 정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하였다.

조부모님 들어 계신 유택(幽宅)의 사초 작업은 이미 시작되어 새로 둥글고 곱게 만들어진 봉분에 한창 떼를 입히고 있었다. 어린 시절, 봄이 되어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이끌리듯 산을 오르곤 했었다. 마땅한 장난감도 텔레비전도 없던 그 시절에는 산과 들판을 쏘다니는 것이 놀이였다. 비탈진 산을 오르다가 갑자기 잔디 깔린 평지가 되면서 산소가 나타나면 그곳이 무덤이라는 것도 잊고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가파르고 어둑신하게 나무 우거졌던 수풀 속에서 빠져나와 마치 무대의 조명을 받듯 동그랗게 햇빛 쏟아지는 산소 주변으로 들어서면 어쩐지 그곳이 우리들의 쉼터인 것만 같은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예닐곱 우리들은 둥근 봉분에서 미끄러지며 놀기도 하고 산소 앞의 상석(床石)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죽음에 대한 공부를 했는지도 몰랐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는 것이고, 죽는다고 해서 산 자와 절연되는 것이 아니라 산 자의 삶과 함께 있는 것임을……. 어쩌면 옛 조상들의 시묘살이도 부모를 공경하는 의미와 더불어 산 자의 죽음에 대한 예행연습이 아니었을까. 또한 '죽음이 무섭거나 외로운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위무의 의식이기도 했으리라는 짐작을 해보는 것이다.

잠시 후 여든이 넘으신 큰고모를 비롯하여 작은 고모내외, 숙부 내외 등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올라오셨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연로하신 어른들이 이리 건강하게 거동하실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기쁨으로 다가오며 오랜만에 만나는 집안 어른들의 손을 잡아 보았다.

돌아가신 분께 새 집을 지어드리는 봄날, 일가가 모여 음식을 나누니 어른들의 주름진 얼굴들이 애틋하고 아리다. 작은 고모부가 막걸리를 드시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군대 간 손자가 드리는 안부전화다. 막걸리로 붉어지신 얼굴에 손자의 효심까지 겹쳐 고모부의 얼굴이 화사해진다. 그새 고모들은 여기저기서 취나물을 캐고 계시다. 그렇다. 부모님의 집에 와서 자식들은 이토록 편안하다. 삶과 죽음은 봄빛에 함께 흐르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