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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함락될 때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한 의기 논개의 충절을 찬양한 변영로의 시이다. 이 시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논개에 대한 대중가요도 한동안 많은 인기를 얻은 적이 있어 논개에 대해서는 누구나 대부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역시 비슷한 시기에 구국의 활약을 했던 의기 '어란'의 존재는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최근 1700만 관객이라는 영화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영화 '명량'은 '명량해전'을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명량해전 승리의 숨은 공신이 어란이라는 기록이 있다. 사실 영화 '명량'은 요즘 극중 인물로 나왔던 한 장군의 후손들로부터 조상을 왜곡되게 그려 정신적 피해가 막심하다는 항의를 받고 있다.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한 장치였는지는 모르지만,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오히려 실제 명량해전에 기여했던 '어란'이라는 인물을 적절히 영화 내용에 삽입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정유년(1597) 명량해전 이틀 전인 9월 14일의 난중일기를 보면, 김중걸이라는 사람이 왜선에 잡혀 있었는데 김해 사람이라는 여인이 왜장에게 청하여 묶인 것을 풀어 주었다. 그 날 밤 그 여인이 김중걸에게 '왜놈들이 여러 배들을 모아 조선 해군을 몰살한 후 바로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하더라'며 몰래 일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는 선조 30년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순신은 왜선의 여인으로부터 정보를 탐지하여 곧장 장계하였다'는 내용도 남아 있다.

이런 어란의 존재를 발굴해 낸 사람이 해남의 박승룡 옹이다. 박옹은 "한국은 어란을 드라마틱한 역사 변이자원으로 보유하다"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어란은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울돌목에서 전사하자 그 이튿날 인근 벽파진의 절벽에서 투신했다. 나라를 위해 애인도 버리고 군사 기밀을 전달하여 승리에 일조했지만 애인을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으로 목숨을 버렸다는 것이다. 다음날 어부가 어란의 시신을 거두어 소나무 밑에 묻었다. 당시 마을사람들은 그 넋을 기리기 위해 석등롱을 세워 매일 밤 점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다. 지금도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마을의 동네 주민들이 정성스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승룡 옹은 어란이 몸을 던진 낭떠러지에 2013년 표지비와 어란상을 세웠다. 비용은 일제강점기 해남 태생 일본인들인 고니시 유이치로(71) 형제가 댔다. 그들은 한·일간의 사실(史實) 발굴에 대한 축의금으로 내놓은 것이라 한다.

역사 속에는 우리가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호국의 여인들이 수없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한 인물들을 발굴하는데 심혈을 기울여도 부족할 터에 이미 뚜렷한 업적이 명백한 항일 운동의 상징 유관순 같은 인물마저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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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