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9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前 산소마을 편집장

80년대 초, 겨울이다. 영배씨는 서른 살의 청년이었다. 하지만 정신연령은 초등학교 수준의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러웠다. 몸집은 거대했고, 짧게 깎은 스포츠형 머리에 얼굴은 대추처럼 붉었다. 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결코 못난 얼굴은 아니었다. 그가 교회에서 주로 하는 일은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 등장하는 꼽추 콰지모도처럼 교회의 종을 치는 일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이니, 교회에서는 청년부로 활동했다. 심성은 순했으며 매사에 성실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이면 어김없이 교회의 종소리가 그의 손에서 울려 퍼졌다.

"꼽추인 '콰지모도'는 거기서 살고, 거기서 자고, 거의 한 번도 거기서 나가지 않았다. 그는 거기(노트르담 성당)와 닮아가고 있었다."라고 한 것처럼 영배씨도 교회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시골집에서 흑염소를 키우는 것과 교회 종치는 것이 그의 전부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영배씨를 놀려대고 화가 난 그가 뒤뚱뒤뚱 쫓아다는 일은 일요일 아침의 흔한 장면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교회 청년들은 교회 다락방에서 밤을 새웠다. 그리고 새벽이 오면 가가호호 방문해 집 앞에서 '새벽송'을 부르곤 했다. 교회 다니는 청춘남녀가 이른바 어른들로부터 합법적으로 외박을 허락받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새벽이 올 때를 기다리며 청년들은 둥글게 원을 만들어 커다란 이불에 발을 넣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선물을 주고받는 순서였다. 어느 특정인을 대상으로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선물을 모두 모아 무작위로 사회자가 임의로 전달하며 선물 안에 든 짓궂은 벌칙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었다. 벌칙의 내용이 꽤 재미있어서 웃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오는 것이었다. 서로의 선물을 주고받으며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마침내 영배씨 차례가 돌아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벌칙내용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주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참석한 모든 이들은 결빙점에 선 것처럼 굳어버렸다. 보통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농으로 여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영배씨의 경우는 달랐다. 그야말로 거짓 없는 '사랑의 고백'이니 받는 여자 입장에서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장미꽃을 들고 누군가를 향해 방향을 틀자, 여자들의 입에서 연신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P씨에게 다가섰다. 모든 시선이 장미꽃을 준 그의 손에 모아졌을 때, P씨는 당황했는지 장미꽃을 떨쳐버리고 달아났다. 붉은 장미꽃잎은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별빛으로 연한 푸른색이 감도는 새벽, 논두렁길을 지나면서 나는 P씨에게 물었다. "그냥 받아주지 그랬어요?"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P씨는 "신앙과 사랑은 다르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며칠 동안 새벽 교회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고, 영배씨도 P씨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다시 새벽 종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영배씨는 그 뒤로도 여전히 흑염소를 키웠고, 일요일 아침 아이들이 어김없이 그를 놀려대면 영배씨는 뒤뚱거리며 쫓아다녔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