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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인간의 몸은 오직 현재의 시간만을 접촉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분절은 인간의 흐르는 삶 속에서 그다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을 뿐이고, 미래는 예비된 시간일 뿐 도저히 현재가 될 수 없다.

과거를 만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진이다.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의 표정, 정황 등을 들여다보면 공통된 결론은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군대시절 사진, 어린 나를 안고 있는 젊은 어머니의 모습,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옆집 누나와 마당가 꽃핀 앵두나무 앞에서 차렷 자세로 찍은 초등학교 시절의 나, 친구들과 수학여행 때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잡은 포즈 등 장난스런 사진조차도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을 아릿하게 한다. 어떤 풍경의 사진이라도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은 다시 그때 그 시간 속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엄정한 사실 때문이리라.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카메라는 귀한 물건이었다. 개인 카메라가 많지 않아서 소풍을 갈 때면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가지고 갔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서 셔터를 누르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것은 이 모든 것이 나의 봉인된 과거가 되어 열매처럼 저장된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별다른 기술 없이 힘들이지 않고 현재의 순간들을 무한정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따라서 한동안 나는 사진이란 특별한 배움 없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비전문 영역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저 카메라의 사용법만 잘 숙지하고 매뉴얼대로만 찍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좋은 사진이란 멋지고 훌륭한 순간만 우연히 잘 포착하게 된 행운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온 것은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였다. 아무래도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각도라든가 빛의 조절 등 전문적 배움이 필요했다. 사진 공부를 조금 하면서 훌륭한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가를 뒤늦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제주 여행에서 만난 '사진작가 김영갑'은 특별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는 제주의 풍경, 그 중에서도 중산간 지역의 오름에 홀려 20여 년을 제주에서 살다 오십이 채 못 되어 불치병으로 세상을 떴다. 그는 폐교된 제주의 '삼달국민학교'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되살려냈다.-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지난 3월말 김영갑 갤러리의 앞뜰은 천진한 봄햇살이 난만했다.

김영갑은 막 봉오리가 벌어지려는 자목련 앞 작디작은 토우의 모습으로, 카메라를 목에 걸친 돌하르방의 모습으로 곳곳에 숨 쉬고 있었다. 그가 남긴 사진이 전시된 갤러리 안은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름의 능선들과 제주 푸른 바다로 넘실대고 있었다.

"바람이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삽시간의 황홀을 선물하는 제주의 혼을 카메라에 가두려고 그는 정한 장소에 앉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사이 그는 졸참나무 이파리처럼 여위어 갔고 영혼의 빛깔은 그가 사랑한 마라도 물색으로 짙어져 갔다"

시인 정희성의 헌사다. 자신의 육신을 하얗게 바래어가며 그립고 아름다운 제주의 순간들을 우리에게 안겨준 그의 삶은 그렇게 우리의 삶에 또한 인화(印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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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