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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오랜만에 찾아간 서울의 거리는 맑았다. 청주는 한동안 폭설이 내려 교통 대란으로 시끄러웠지만, 서울은 눈이 온 흔적조차 없었다. 전철을 타고 대림동 입구에서 내려 친구의 사무실을 가기 위해 걷던 중, 낯익은 공원이 눈에 띄었다. 공원의 이름은 미처 생각나지 않았지만, 또렷하게 기억하는 풍경 하나가 있었다. 바로 번데기 할머니였다.

6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곳 대림동에 위치한 '산소마을'이라는 잡지사에서 근무했다. 근무 중 잠시 여유가 생기면 이곳 공원에서 산책을 하곤 했었다. 공원을 걷다 보면 늘 마주치는 풍경이 하나 있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 입구에서 번데기를 파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마치 그 공원에 심겨진 나무 한 그루 같았다. 계절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나무처럼 할머니는 계절이 바뀌면 옷차림만 변할 뿐이었다. 시청에서 무허가 단속반이 나와도 할머니는 결코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모든 상인들이 쉬는 명절인 설날과 추석에도 할머니는 붙박이처럼 홀로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리어카 앞쪽에 붙인 아이의 사진을 발견했다. 커다란 사진은 정성껏 코팅을 해서 비나 눈이 와도 변색되지 않고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머니, 손자인가 봅니다. 귀엽게 생겼네요·"

번데기 할머니는 말없이 그 사진을 보다가 사진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내가 젊은 새댁일 때, 이 아이를 잃어버렸어. 바로 이 공원에서…. 화장실이 하도 급해 잠시 아이를 놓고 다녀왔는데 그 사이 없어진 거야. 애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어. 결국 다시 돌아온 곳이 아이를 잃어버린 이곳이야. 다른 곳에서는 도무지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어. 이곳에 있으면 아이가 돌아올 것만 같거든.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번데기를 팔기 시작한 거야. 놀면서 기다릴 수는 없잖아·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넘었어. 그 아이가 지금쯤 30대 중반은 되었을텐데…."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공원풍경이었건만, 번데기 할머니만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자리를 옮겼나 하고 공원을 몇 바퀴 둘러보아도 할머니는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기적처럼 할머니가 아들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괜히 가슴이 뛰었다. 한편으로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번데기 장사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했다. 근처 상점 문을 열고 번데기 할머니의 소식을 물었다.

"돌아가셨을 겁니다. 아마도. 작년 여름인가. 쓰러지셔서 구급차에 실려 가셨어요. 그 뒤로 소식이 없어요."

끝내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살아계셨다면, 분명 다시 나타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다린 세월을 헤아려보니 마음이 한없이 저리고, 먹먹해 왔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할머니의 원통한 심정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한평생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세월이었을 것이다. 부디 혼령이라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을 꼭 한번 만나보았으면 하고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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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