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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2.13 17:41:5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전쟁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영화 '고지전'에서의 전쟁은 다만 살기 위해 이유도 모른 채,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누어야 했다. 도대체 왜 싸워야 하는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적이라 하여 죽고 죽이는 행위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영화의 앞부분에서 "너희들은 이 전쟁을 왜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는 거다."라고 확신하던 인민군 장교는 다시 애록고지의 비밀 장소에서 조우하게 된 국군 중위가 "왜 전쟁을 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글쎄…그때는 확실히 알고 있었어. 그런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어."라고 말한다.

인민군 장교의 답변에는 전쟁의 무의미함이 묻어난다. 몇몇 리더의 이념적 대립이나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 전쟁이 시작되지만, 종국에는 그러한 명분조차 사라져 버리고 참혹한 살육만이 도드라져 남는 것이다.

지난 주, 나는 베트남여행을 다녀왔다. 북부도시 다낭과 후에였다. 베트남으로 가는 도중, 비행기 옆 좌석의 한국 노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46년 만에 다시 베트남을 방문한다는 그분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흘끔흘끔 창밖을 바라보는 그분의 모습에서 까닭모를 아픔이 묻어났다. 그는 또렷하게 말했다. "난 백마부대 9사단 30연대 2대대 7중대 1소대 1분대였어. 18개월 베트남 전투에 참여했는데 운 좋게 살아 돌아왔어." 그는 베트남 참전용사였던 것이다.

"베트남에 왜 다시 가보고 싶으셨어요?"

"모르겠어. 그냥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어. 살아오면서 늘 생각을 했어. 칠순기념으로 자식들이 보내줬어."

비행기에서의 만남 이후, 그분을 다시 만난 것은 세계 최장의 산악케이블이 있는 바나 국립공원이었다. 1500m의 높이를 케이블카로 무려 20분간 타고 오르는 곳이었다. 우연히도 그분과 다시 케이블카에 동승하게 된 것이다. 발밑은 울창한 밀림이 그대로 드러나 아찔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내내 그분은 발밑의 밀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함께 여행 온 부인이 "참, 저렇게 험한 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 말로만 듣다, 막상 보니 실감나네."라며 가만히 남편의 손을 쥐어 주었다.

그분은 "46년 만에 베트남에 다시 와보니, 그때 나와 목숨 걸고 싸웠던 적들이 나와 똑같이 평화롭게 늙어가는 거잖아. 그때는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왜 싸웠는지 몰라."라고 말한다. 그분에게 마치 영화 '고지전'의 인민군 장교 현정윤의 빙의가 씌워진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곧 개봉할 전쟁영화 '워 호스'도 새겨둘 만하다. '워 호스'를 감독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는 적군도 아군도 없다. 영화가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바로 이것이 휴머니즘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독일군과 영국군이 모두 철조망에 갇혀있는 말 '조이'를 구하기 위해 서로에게 겨눴던 총기를 거두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라고 말한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방문한 '후에'의 카이딘 왕릉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들판에 핀 들국화에 코를 대며 "이곳 꽃에는 향기가 없다. 겨울을 보내지 못한 꽃은 향기가 나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자연의 순리는 엄정하다. 겨울처럼 혹독한 전쟁을 이겨내야만, 우리 세상도 휴머니즘이라는 꽃이 비로소 향기를 품어내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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