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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내는 텔레비전을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보통 주부들이 좋아한다는 드라마도 거의 보는 법이 없다. 그런 아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즐기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요즘 각광받고 있는 가요 프로그램들이다. 문학적 감성을 갖고 있는 아내는 주로 가사가 좋은 노래를 음미하며 듣는 편이다. 때마침 아내가 시청하고 있는 프로에서 내 노래방 18번인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흘러나와 이끌리듯 아내 옆에 앉았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다소 전형적이고 감상적인 노랫말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제 한 살 더 나이를 먹은 탓인지 유난히 이 구절이 가슴에 와 박힌다. 옛 선인의 문장으로부터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그동안 많이 회자되었는데, 정말이지 '살아온 세월만큼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실연의 달콤함'이라는 표현은 젊은이들의 삶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노래를 두고 텔레비전 출연진들의 대담 속에서 적어도 50대 후반 정도의 연륜이 있어야 노래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글의 표현기법으로 치자면 이 '실연의 달콤함'은 앞뒤가 모순되는 역설법이다. 실연은 가슴 아프고 쓰라린 것인데, 어떤 이는 실연으로 인하여 세상을 버릴 만큼 때로 가혹하기도 한 것인데, 왜 달콤하다 하였을까. 그것은 그 앞에서 먼저 노래하고 있는 '새삼 이 나이에'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창 짝을 찾아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실연이 전혀 달콤하지 않다. 아픈 만큼 성숙해질 뿐이다. 하지만 사랑 문제를 포함하여 인생의 희로애락을 몇 고비는 족히 넘겨온 50대 이상에게, 이성과의 사랑에서 파생되는 실연은 달콤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나이에 남녀 간의 두근거리듯 떨리는 만남과 사랑이란 극히 희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까지 독신으로 살다 만난 사람이거나, 배우자와 사별하고 나서의 새로운 사랑이거나, 혹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만남이건 간에 자녀들의 사랑을 지켜볼 나이에 가슴 떨리듯 애절한, 새로운 사랑을 하기란 지극히 어려우므로, '실연'이라 이름붙일 달달한 사랑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회복할 수 없는 순간들과 잃어버린 것들로 인하여 왠지 가슴 한 곳이 비어 있는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다.

'자간(字間)이 천 길이고 행간(行間)이 크레바스다'

미술평론가 손철주의 말이지만, 이 노랫말에 대비하니 제격이다. 촉촉해진 눈가로 텔레비전을 이윽히 바라보는 아내의 옆모습 귀밑머리가 희끗하다. 아내의 나이도 올해로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다. 처음 보았을 때 청순하고 서늘했던 눈매에 주름도 많이 잡혔다. 아내도 한때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TV에서 초로의 가수는 여전히 노래한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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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