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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얼마 전 베란다 창고를 정리하던 아내가 탄식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인가 보았더니 열권에 가까운 가족 앨범이 창고의 습기 때문에 일부 사진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것이었다. 앨범에는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간의 성장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주로 담겨 있었다. 부피가 큰 앨범을 책꽂이에 보관하기 어려워 몇 년 전 전집류의 책들과 함께 창고에 넣어 두었던 것인데, 그만 통탄할 일이 생기고 만 것이었다. 걸음마도 떼기 전부터의 사진들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내는 무척이나 상심했다. 배경은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되었더라도 다행히 아이들 얼굴만이라도 남은 사진들을 아내는 정성껏 오려 새로운 앨범에 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아내의 시간여행은 시작되었다.

집안 전체를 이 잡듯 뒤져내 버리지 않은 옛 필름들을 찾아냈을 때, 아내의 얼굴에는 다시금 생기와 화색이 돌았다. 자신이 보관을 잘못해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을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에 휩싸여 있던 차였다. 이제는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코닥'이나 '후지' 필름들을 사진관에 맡겼더니 고맙고 신기하게도 그 필름들은 기어 다니거나, 보행기를 타고 있거나, 할머니 품에 안겨 환히 웃고 있는 아가들의 얼굴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그러고 보면 필름이 좋긴 한 것 같아요. 요즘은 디카나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모니터에서만 몇 번 보다 사진들이 그냥 사라져요. 클릭 한 번에 그냥 날아가는 경우도 많구요"

사진관 주인의 말이었다. 필름 현상이 사라져서 수익이 줄어든 서운함도 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보면 필름이 사라지고부터는 앨범에 담기는 사진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아내가 앨범을 창고에서 꺼내보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손자들 사진을 갖다달라고 부탁을 하면서였다. 노쇠해지셔서 외출도 불편해지시니 집안 곳곳에 손자들 사진이라도 놓고 보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웅진출판사에서 주관한 독후감대회 시상식에 참석했던 가족사진을 크게 현상하여 액자에 담아 갖다 드렸다. 필름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손자들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즐거워하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부모님을 더욱 기쁘게 해드릴, 사진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가진 매체를 생각했다. 바로 5년 이상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캠코더였다. 아이들의 출생부터 초등학교 4학년 정도까지 촬영된 테이프가 열 개 남짓 있었다. 캠코더회사의 서비스센터가 청주에는 없어서 아내는 대전까지 캠코더와 촬영했던 테이프를 들고 직접 갔다. 서비스센터에서는 택배로 보내라고 했지만 아내는 직접 오가기를 고집했다. 요즘 세상에 분실되는 택배가 어디 있냐며 만류했으나 아내는 고집을 꺾지 않고 몇 번을 직접 오가며 테이프를 DVD로 변환했다. DVD에 담긴 내용은 평범한 일상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청년이 다 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기 때 모습, 유치원 재롱잔치, 젊었던 우리 부부의 모습, 손자를 어르는 부모님의 영상 등이 생생한 육성과 어우러져 우리 가족만의 영화이자 다큐로 손색이 없었다.

요즘 부모님은 며칠 째 어린 손자들의 웃음과 재롱에 푹 빠져 지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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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