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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너와 나의 생애 사이엔

벚꽃의 생애가 있다

일본 하이쿠의 거장 마쓰오 바쇼는 봄날의 벚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 봄날의 환영처럼 잠깐 부풀었다가 곧 스러지는 벚꽃처럼 사람의 인생도 그렇듯 덧없이 짧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꽃으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에 화기(和氣)가 넘치는 것을 묘사하지 않았을까 넌지시 짐작하여 본다.

이는 지난 주말 가족과 무심천 벚꽃 구경을 나갔다가 얻은 단상이다. 이제는 부모와 어디 나들이하는 것을 영 마땅찮아하는 중고등학생 아들 녀석들과 모처럼 여유롭게 꽃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녀석들과 집의 현관에서부터 삐걱거렸다. 큰 녀석은 얼굴의 과도한 선크림 색깔 때문에 작은 녀석과는 스마트폰 때문에 언쟁이 벌어진 것이었다. 특히 풍경을 좀 보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스마트폰을 잠시 압수한 아빠에 대한 불만으로 씩씩대는 작은 놈의 열기가 무심천까지 가는 내내 운전석까지 감지되었다. 치밀어오르는 화증으로 치자면야 당장 차를 돌리고 싶었지만 눈앞에 천천히 연분홍 꽃구름으로 뭉실뭉실 피어나는 벚꽃나무가 줄지어 맞아주니 어느 틈에 화도 슬그머니 가라앉고 말았다.

"어? 환자들이 시위하나?"

큰애가 문득 소리를 질렀다.

길가 꽃그늘 아래 링거를 매단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서 있었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여기저기 기브스를 하고도 꽃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 불편한 걸음을 했을 거라 생각하니 따스한 마음이 물결져 오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우리 가족도 인파 속에 흘러들었다.

세상은 사흘

보지 못한 동안에

벚꽃이라네

역시 바쇼의 시구처럼 어느 틈에 투박한 나뭇가지에서 이렇게 혼신의 개화를 이루어냈는지, 천상의 맑은 구름이 꽃잎 모양으로 현신한 듯 아름다웠다.

그 꽃그늘 아래로 다정한 친구와 연인들, 가족들의 모습은 꽃보다 더 볼만했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 옆에 작은 꽃송이 꽂아주고 어깨를 감싸 안으며 걸어가는 청년, 벚꽃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달고나'를 사먹고 있는 손녀딸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등에 업혀 벚꽃송이로 이마를 간질이며 까르륵거리는 아기……. 무엇보다 꽃의 절정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지만 환한 표정들이어서 그런지 마치 아는 사이인 듯 정겨웠다.

옆을 돌아보니 어느 사이에 우리 아이들의 얼굴도 환하다. 다 큰 녀석들이 솜사탕을 사먹겠다고 졸라댄다. 솜사탕을 얼굴에 묻히고 형제간에 히히거리며 걷는 아이들을 뒤따라 벚꽃 길을 걸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슬그머니 아내의 손을 잡아 본다. 그리고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를 읊조린다.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 하나 없네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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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