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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얼마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시작한 동기는 엉뚱하다. 뒤늦게 뜻한바 있어 '위대한 화가'를 꿈꾸는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고갱'의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 중학교 2학년에 올라선 막내 아이의 재능을 더 늦기 전에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과 적성이 있다면 미리 발견해 이끌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동안 아비역할에 소홀했던 과거의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면피(免避)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막내 아이는 평소 그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보였다. 뜬금없이 도화지와 연필을 들고 자기 엄마를 그린다며 쓱쓱 그려내면 요모조모 특징을 잡아내는 안목이 제법이었다. 아이만 보내어 선생님에게 맡겨도 될 터이지만, 굳이 내가 함께 화실에 등록까지 한 이유는 얼마간은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그리다보면, 모든 물체가 면(面)으로 분리되어 보이고 밝고 어두운 면의 구별이 됩니다. 그때가 되면 그림이 조금 더 쉬워질 것입니다."

원통(圓筒)의 명암이 좀처럼 보이지 않아 뜬 구름 잡는 기분으로 연필을 끼적거리던 내게 화실 선생님이 들려준 말이었다. 원통을 그렸으되, 좀처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림을 선생이 앉아 이곳저곳 손을 대니 금방 그림이 살아났다. 우두커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어둠속을 걷고 있는 것처럼 갑갑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그리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으로 그리는 것과는 차이가 확연했다. 그 간격이 멀고, 아득했다. 그런데 절망보다는 묘한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직은 내게 보이지 않는 그 선생의 경지를 한번쯤 느껴보고 싶은 열망이었다.

그로부터 내내,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론(理論)을 근거로 모든 물체에 적용해보려 애썼다. 그리고 반복해서 그리고 또 그렸다. 그런데 어느 날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의 얼굴도, 건물도, 모든 사물의 면이 보이고 명암의 깊고 낮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고 그리니, 그림이 한결 쉬워졌다. 그때 화실 선생님이 다시 내게 말했다.

"이제는 이론(理論)을 버리고, 자신의 느낌대로 표현해 보세요."

앞으로 29일 후면, 4·11 총선이다. 일반 서민들은 한 달 동안 왕이 되고,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하인처럼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시쳇말로 '국회의원은 하인처럼 한 달만 고개 숙이면, 4년 동안 왕처럼 산다.'고 하던가. 정말 남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이렇게 뽑힌 국회의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실망을 안겨주었던가. 그리고는 잘못 뽑았다고 얼마나 한탄을 했던가. 그러니 이번만큼은 제대로 보고, 뽑아야 한다.

그림처럼 후보자가 나누어주는 유인물 속에 내세운 약속의 실현성과 참신성 그리고 그들이 속한 정당의 정책 등은 이론(理論)이다. 그 이론을 근거로 사람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사이에 후보자의 면(面)이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명암의 깊고 낮음이 보이듯, 후보자의 깊고 낮음이 드러날 때 '자신의 온전한 느낌'으로 이번 국회의원을 선택한다면 내 의무에 떳떳할 것이다.

이제 우리 유권자가 남은 기간에 아무런 노력 없이 '학연, 지연, 혈연'에만 의지한다면, 후회의 악순환은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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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