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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비 내리고 나니, 가을이 성큼 겨울로 몇 발자국 더 나아간 느낌이다. 아파트 입구 수북이 쌓인 낙엽이 한차례 흩날릴 무렵, 대 여섯 살 어린 녀석이 바닥에 벌렁 누워있었다. 몇몇 또래의 아이들이 그 아이를 가운데 두고 무어라 떠들고 있었고 바닥에 누운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애들아,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구름이 참 잘 보인다. 이리와 누워봐."

나는 호기심이 동하여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내려다보니 얼마 전에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였다.

며칠 전 아파트 입구 벤치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했던 참에 자동차에서 책을 꺼내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 보는 꼬마 아이가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슬며시 다가와서는 앉았다. 그러면서 슬쩍 말을 거는 것이다.

"하늘에는 목성도 있고 토성도 있죠. 그리고 명왕성, 천왕성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별이 제일 크고 예쁠까요?"

나는 어린아이의 입에서 별 이름이 줄줄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태도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서 "잘 모르겠는데……"라고 얼버무렸더니 그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왜 모르는 척하고 그래요?"라고 벌떡 일어나서 가버렸다. 아이가 훌쩍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며 참 특별한 아이라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오늘 또 이렇게 마주친 것이다. 누워있던 아이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쪼그려 앉아 아이를 보며 물었다.

"그렇게 누워서 보면 구름이 정말 잘 보이니?"

"그럼요. 식빵처럼 몽글몽글 하네요."

아이의 크고 맑은 눈 속에는 서늘한 기운에 잠긴 저녁 하늘이 가득 담겨있었다. 문구사 앞에 내놓은 오락기 앞에서 게임에 팔려있는 어린 녀석들의 뒤통수만 보다가, 비록 콘크리트 바닥일망정 바닥에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별과 구름을 꿈꾸는 아이를 보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안의 '어린왕자'가 저편에서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내 안의 그대여 / 억만년 전부터 그대는 원시림의 / 한포자로 내게 와서 /

너는 나에게 비밀로 살고 있다 / 그 누구도 찾을 수 없고 / 깰 수도 흔들 수도 없는 그대 / 그대는 내 안의 비밀로 살고 있다.'

-허윤정 시인의 <비밀>

긴 세월을 거슬러 온 원시림의 한 포자가 그 아이의 입을 통해 술술 풀려나오는 것만 같았다. 아이의 말과 눈빛에서 난, 문득 희망을 가져보았다. 어쩌면 이런 어린 친구 하나쯤 사귀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마음을……순간에도 수 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

쌩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장사꾼이 들려준 말이다. 이 가을, 바람 같은 마음이 아이에게 온전히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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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