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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어머니는 오늘도 봄빛이 좋은 창가에서 두꺼운 돋보기 너머의 세상에 푹 빠져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긋습니다. 자신의 노쇠한 육신처럼 모서리마다 헐어버린 빛바랜 가죽 덮개의 낡은 성경책을 언제나 분신처럼 끼고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성경책이 안타까워 어머니께 새 성경책을 사다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선물을 받자마자 어린아이처럼 성경책을 쓰다듬으며 좋아하셨지요.

"얘, 어떤 선물보다 가장 기쁘다."

며칠 뒤, 어머니는 여전히 성경책을 보고 계셨어요. 그런데 새 성경책이 아니라 그전의 낡은 성경책을 여전히 읽고 있었습니다. 의아해서 물었지요.

"어머니, 새 성경책은 어쩌시고, 낡은 성경책을 읽으세요·"

"똑같은 내용이지만, 그전 성경책이 눈에 잘 들어와. 마음에도 맞고"

아마도 오래된 성경책에는 어머니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겠지요. 수없이 그어댄 밑줄에는 세월이 켜켜이 새겨져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고 오래된 친구가 되어버린 낡은 성경책을 어머니는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도시를 찾을 때마다 얻어지는 물건들을 통해 과거를 만지고, 보고, 냄새 맡을 수 있지요. 이곳은 세월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곳입니다."

오래된 물건을 파고 사는 '올드가든' 대표 성원경씨는 빈티지 수집가입니다. 지난 시간이 담긴 물건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새것을 추구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한 요즈음 세상이지만, 오래된 물건에서 그 어떤 것을 발견하고 위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요.

"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잔뜩 쌓인 먼지조차 소중하게 여깁니다. 절대 먼지를 털지 말고 그대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래된 물건들은 어딘가 흠집이 나 있고 결점이 있어요. 오랜 세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해지고 깎여지고 온갖 수난을 받은 것들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수집가들은 그 결점이 오히려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오래된 물건에는 어딘가 흠집이 나있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니 그 흠집이 결점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이며 삶의 흔적이라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빈티지 전문가들은 오래된 흔적을 흔히 '파티나(patina)'라고 부릅니다. 오래된 흔적은 닦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물의 가치를 높여주는 보증서인 셈이지요.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 찬 '올드가든'을 한 바퀴 둘러보자 사물들이 말을 거는 듯합니다. 백색 다이얼 전화기에서는 '여보세요·'라며 옛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오래된 호롱불에서는 새벽에 일어나 두런두런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새끼를 꼬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더군요.

어머니가 읽고 있는 낡은 성경책에서는 페이지마다 밑줄을 친 그 시절의 이야기가 말을 걸겠지요. 처녀시절부터 갖고 다니던 성경책을 이제 와서 낯선 성경책으로 바꾸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제야 백번 이해가 되었습니다. 책갈피에 꽂아둔 쪽지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꼭꼭 모아두시는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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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