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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아빠, 우리 집에서는 저런 거 왜 안 해?"

설날 오후, 외갓집에서 TV를 보던 작은 아이가 물어왔다. TV에서는 아침 차례를 지내며 대가족끼리 둘러앉아 음복(飮福)을 하고 덕담을 나누는 장면을 방영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할 말이 궁했다. 명절 아침이면, 의례히 있어야 할 풍경이었지만 지금 우리 집에서는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보통의 설날 아침 정경처럼 과거 본가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장자의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가족전통이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큰집은 하루 종일 손님맞이로 몸살을 앓는다. 과거 집성촌의 경우에는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했지만, 물질문명의 발달로 자손이 사방 줄기처럼 뻗쳐나가니 이제는 온 세상으로 흩어져 산다. 그래서 철새가 때가 되면 어디론가 집단으로 멀리 이동하는 것과 유사하게 명절 때만 되면 사람들도 고향으로 긴 행렬을 이루며 이동한다.

올 설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또 지났다. 단출한 우리 집안의 설풍경은 여전했다. 그야말로 직계가족들로만 엄선(?)되어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눈다. 그리고 요즈음 유행하는 개그 프로그램 '애정남'이 정해준 모범답안처럼 아침식사가 끝나면 각자 처갓집으로 직행한다. 그렇게 자란 우리 아이들은 친척의 범위를 사촌으로 한정짓는다. 그 이상의 확장된 친족 개념은 교과서로나 접할 뿐이다. 나의 아이들은 나의 조부모를 기억하지 못하고 육촌형제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TV를 통해 접하는 명절 아침, 수십 명의 가족들이 차례를 지내는 풍경이 생경했음이 당연한 일이다.

조부모님 생전에는 설날 아침이면 음식냄새가 훈기처럼 돌고 차례준비로 집안이 술렁였다. 아이들은 제사상 주변을 맴돌며 차례를 준비하고 지내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예(禮)를 보며, 효(孝)를 익혔다. 할아버지가 창호지를 오려, 가는 붓으로 정성스럽게 지방(紙榜)을 쓰실 때면 손자들은 빙 둘러앉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그 분위기를 은근히 좋아하셨다. 아이들은 또래의 친척들과 어울리면서 은연중 조상을 기억하며 전통의 습속이 몸에 익어 갔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집안에 차츰 친척간의 왕래가 줄어든 것은 명절 아침 차례(茶禮)가 사라지면서였다. 장자인 아버지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제사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제사 때, 절하는 행위가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례라는 구심점이 무너지자, 친척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전화기를 통해 새해 덕담을 나누는 것으로 서로의 예를 차리곤 한다.

명절이면 어디론가 이동하려는 오랜 습성은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을 꿈꾼다. 긴 행렬로 꼬리를 물고 고향으로 향하는 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훌쩍 해외로 떠나거나 국내의 한적한 휴식처를 찾아 가족과 단란하게 새해를 계획하고 며칠 동안이지만, 달콤한 휴식을 즐기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서양인들은 묘지에 꽃을 놓지만, 동양인들은 묘지에 밥을 놓는다.'라고.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더 이상 묘지에 밥을 올려놓는 정서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설날의 세시풍속도 세월이 흐르니, 아쉽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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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