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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친구가 생일 선물로 멀리서 난을 보내왔다. 그윽한 그 심정도 고맙고, 한겨울 푸르게 벋어 있는 풍성한 줄기가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데 은은한 향기까지 감돌았다. 가만히 줄기 속 안을 들여다보니 작고 흰 꽃이 다복하게 피어 있었다. 아내는 꽃향기를 흠향하며 이번만은 잘 키워보리라 결심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난을 키워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난은 어머니 드려야겠어요."

그런데 설 전날 본가에 다녀온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기르시는 화분은 많지 않지만 모두 십 년 이상 된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해마다 설날 때면 늘 부러맞춘 것처럼 군자란과 게발선인장의 꽃이 탐스럽게 피어 모인 식구들을 즐겁게 한다. 더구나 아내를 경이롭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선인장 화분이다. 그것은 올해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른 아내가 나와 연애하던 스물 하나의 대학생 시절, 어머니께 처음 인사오면서 사다드린 선물이었다. 학생 신분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아내는 꽃집에서 그야말로 아주 작은 선인장 화분을 샀던 것인데, 어머니는 30년 가까이 그 화분을 정성스레 키우고 계신 것이다. 선인장은 해마다 꽃도 피운다.

"올해는 꽃이 네 송이 피었다. 니들 네 식구가 다 좋을라나부다."

어머니는 때로 이렇게 선인장 안부를 전해오기도 하셨다.

아내 또한 식물을 좋아해서 그동안 많이 길러왔다. 하지만 대부분 수명을 몇 년 넘기지 못했다. 어느 날은 베란다에 쌓여 있는 빈 화분을 바라보며 '바쁜 직장생활은 핑계고 결국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정성'이라는 자책어린 결론을 내렸다.

아내는 설날 아침 일찍 결국 난 화분을 안고 나섰다. 그 장면이 큰아이 어렸을 적 아침마다 어머니께 맡기기 위해 싸안고 나서던 모습과 일순 겹쳐졌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큰아이가 저렇게 건강한 고등학생이 된 것도 아기 시절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키우셨던 덕분일 것이다.

"화초는 물만 준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애기같이 돌봐야 된다. 조금만 찬 기운이 돌아도 감기 걸리는 녀석도 있고… 물을 줄 때도 말도 걸어주고 해야지."

인디언의 어느 부족은 나무를 베어야 할 일이 생기면 며칠 전부터 미리 가서 나무를 향해 험담을 퍼붓는다고 한다. '너는 아주 쓸모없는 놈이야. 이 세상에 너 같은 건 필요 없어.' 이런 말을 매일같이 가서 나무에게 쏟아부은 다음에 나무를 베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거목을 쓰러뜨려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워낙 영성 깊은 인디언들한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릴 것이 못되는 게, 냉혹한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시장 경제에도 다음과 같은 상품들이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모짜르트 음악을 듣고 자란 복숭아, 베토벤 교향악을 들으며 여문 벼"

동물 뿐 아니라 식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것은 이제 흔히 수긍하는 이야기다. 추위가 깊은 것을 보니 봄 또한 멀지 않았다. 이제 봄날의 전령처럼 곳곳에 꽃시장이 설 것이다. 봄의 설렘을 만끽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화초를 들여놓곤 하지만, 기르는 심정은 자식을 입양하듯 정성과 애정을 다해야 하리라. 난초를 유난히 사랑하였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빵은 육체를 기를 따름이지만 난초는 정신을 기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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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