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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한국 생활 13년 차인 민씨가 베트남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작년부터 귀향을 고민했는데 지난 설날 고향에 갔다 오며 생각을 굳혔다고 말한다. 18살에 한국에 와서 올해로 31살이 되었으니 타국 생활에 지칠 때도 됐고 고향을 그리워할 만도 하다.

비자를 변경해서 좀 더 살다 갈까 고민도 했다는 그에게 나는 고향에 돌아가서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격려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타국에서 생활하며 가족의 경제를 책임졌으니 이제는 자기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출국하기 전 식사나 하자며 자리를 마련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한국 생활 중 가장 좋았을 때와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는지 물어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인터넷을 보다가 홀로 한국행을 결정하고 왔는데 한국에 온 지 2~3년 후 베트남 아버지 사업이 크게 실패해서 엄청난 채무가 생겼을 때라고 한다. 그때는 아버지도 그렇고 본인도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절망적인 시기라서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깜짝 놀랐다. 민씨는 얼굴도 잘생기고 노래도 잘해서 각종 행사에 나가면 항상 입상했고, 오랜 한국 생활로 언변도 능수능란한 젊은이였다. 농담도 잘 받아치고 늘 밝은 모습이라 한국 생활을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면에 그런 아픔이 있은 줄 몰랐다. 전혀 그런 내색도 없었기에 그동안 너무 무심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당시 그에게는 절망할 시간도 없었다. 당장 아버지의 채무를 갚는 것이 급해서 그때부터 회사에서 매일 야근하며 번 돈은 다 고향으로 보냈다. 미친 듯이 몇 년을 일만 하다가 2019년 우연히 '틱톡'이라는 SNS를 시작했는데 6개월쯤 후에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구독자가 수직으로 상승하면서 수입이 창출됐고 채무를 상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민씨는 요리를 매우 잘했고 고향의 특산품인 요리 재료를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친구들에게 판매하며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한 월급과 SNS로 부업까지 하며 열심히 생활한 결과 9년 만에 빚을 거의 청산했다고 한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고향의 부모님도 한국으로 초대해 여행할 좋은 기회도 생겼다.

한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만났고 각각의 사연들도 많이 들었다. 머나먼 타국에 와서 성실하게 생활하고 공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며 감동하는 데 민 씨의 고백에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 내 의식 속에 자리함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좋았던 점은 엄청난 채무를 갚을 기회를 얻은 것과 여행을 꼽았다. 더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많이 못해 아쉽기도 하단다. 그동안 번 돈은 빚을 갚느라 고향에 번듯한 새집도 짓지 못해 고향으로 가서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크다고 한다.

한국은 제2의 고향이고 늘 그리운 곳으로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을 거라고 말하는 그. 나는 그가 가진 성실함과 책임감, 반듯한 성품이라면 고향에 가서 정착하고 사는 데도 문제없을 거라 믿는다. 돌아서 가는 그의 마지막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한국에서의 모든 일들은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고 고향에서 새롭게 출발할 민씨의 앞날이 무지갯빛으로 빛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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