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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5.25 17:38:48
  • 최종수정2023.05.25 17:38:48

남형우

충북북부보훈지청 보훈과 주무관

지난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현 정부는 국정과제인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을 수행하기 위해 그동안 부단히 노력했다.

국가보훈처는 규제혁신을 통해 수혜자 확대 및 보훈대상자 불편사항을 개선하였는데 핵심 성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등록 규제 완화를 통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했다.

2022년 12월 의무복무자가 복무 중 자해행위로 사망한 경우 보훈보상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인정기준을 완화했다는 보훈보상차별 시행령을 개정 시행했다.

또 일상생활의 불편정도를 반영해 최저등급인 7급의 신체절단 상이 등을 개선했다.

둘째,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보상 지원을 강화했다.

생활조정수당 및 생계지원금 지급 관련 부양의무자 기준을 보건복지부와의 협업을 통해 기초연금 소득산정 시 보훈급여금 일부를 소득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이에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던 보훈대상자 1만 5천여 명이 기초연금을 신규로 수급할 수 있게 됐다.

생활조정수당 및 생계지원금 지급 관련 부양 의무자 기준을 중증장애인 등 수급자부터 연차별로 단계적 폐지했다.

위탁병원 감면 진료대상자(참전유공자 등) 약제비 지원으로 의료이용 접근성 강화, 의료비 부담을 해소시켜 연간 약 11만 명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했다.

셋째, 국가유공자를 위한 서비스 개선으로 불편을 해소시켰다.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발급한 국가보훈 장해진단서를 제출한 경우, 보훈병원 신체검사 생략이 가능해 신체검사가 20일 이상 단축돼 조기에 국가유공자 여부를 확정했다.

여기에 교통복지카드 전국 호환을 통해 한 장의 카드로 전국 버스, 지하철을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국가유공자 등록 편의를 위해 '찾아가는 보훈심사'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를 통해 고령 등 청문 대상자를 확대해 청문이 증가됐다.

경찰, 소방공무원의 사망당시 적은 기준으로 현충원 안장을 제한하던 것을 사망시점에 관계없이 안장이 가능토록 개선해 이를 통해 1천 400여 명이 현충원에 안장이 가능해졌다.

넷째, 독립유공자의 희생, 공헌을 널리 알리기 위한 예우를 강화했다.

직계 후손이 없는 200명의 무호적 독립유공자의 가족관계등록을 창설했다. 윤동주 지사, 장인환 의사, 홍범도 장군, 오동진 지사의 가족들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헌정했으며, 특별전시전도 개최했다.

전사·순국한 한국광복군 선열 17위를 광복 77년 만에 최초로 국가가 직접 국립묘지로 합동 이장을 추진했다.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간 국가보훈처는 보훈대상자의 불편을 개선하고 수혜자를 확대시키고자 다양한 규제혁신을 추진했다.

6월 5일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될 예정이다.

국가보훈부 승격을 계기로 호국영령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자유의 가치를 확고히 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야 하고, 국정과제인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행정과 규제혁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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