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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古書) 만권에 담긴 외길 인생' 남요섭씨

"우리 고장에 책 박물관 생겼으면"

  • 웹출고시간2013.04.18 18:25:5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윤기윤 기자
봄빛이 가득한 들판을 달렸다. 딱히 비밀스런 장소로 간 것은 아니지만, 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집의 문을 여는 순간, 오래된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방마다 책들이 지천이었다. 차곡차곡 박스에 담겨진 책들이 도대체 몇 권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제대로 정리하면 한 만 권정도 되지 않을까요?"

빼곡히 쌓인 고서들이 세상으로 제 몸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두운 공간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고서는 매우 포괄적이다. 한글과 국문학에 관한 서적을 비롯해 옛 지도책과 향토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남요섭씨의 열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충북에 관련된 향토지와 옛 지도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고서 수집은 보물찾기 같아요. 좋은 책을 만나면 심장이 멈추고 숨이 막힙니다.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책을 열면 선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니 그 순간 정말 행복합니다."

남요섭씨의 고서 수집은 유별났다. 어릴 때부터 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였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마음껏 책을 구입할 수 없었던 남씨가 자연스럽게 찾게 된 곳이 헌책방. 청주 중앙극장 주변과 대성여고 부근 헌책방은 그의 단골 순례 코스였다. 점차 고서의 매력에 빠지던 그는 영역을 넓혀 서울 청계천, 연신내, 광주, 부산 등 전국의 고서점을 찾아 나섰다. 본격적인 고서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헌책 더미에서 희귀한 서적을 발견할 때의 희열은 뭐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맛에 고서를 수집하는 거죠."

고서를 찾는 방법은 다양하다. 과거 이사 가는 집에서 버린 책들은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쓰던 교과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필사본들이 범인(凡人)에게는 한낱 쓸모없는 휴지조각이었지만, 그에게는 값진 보물이었다. 이렇게 얻은 책들 중 1481년도 성종 때의 '두시언해'와 1787년 정종 11년 때의 '정음통석' 등이 있다.

37년간 공직생활을 하던 그가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증명하는 교과서를 세상에 알리면서다. 과거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초등지리서부도'는 1934년(소화9년) 조선총독부가 직접 제작한 지리교과서용 부도였다. 교과서 10~11쪽 '중부조선'편 울릉도 옆 독도가 죽도(竹島)로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약 27년 전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교육한 교과서에 독도가 한국 땅임을 명시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가 아끼는 옛 물건들은 우리고장 충북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1729년 제작된 '공청도'는 우리 고장의 고(古)지도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충청도'란 지명은 충주와 청주에서 앞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조 35년(1602) 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옮겼는데 역모사건이 빈번해 그때마다 충청도는 공홍도(1628) 홍충도(1656) 공청도(1729)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의 취미는 고서수집이지만 시인, 화가, 공무원 등의 신분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 74년 공무원 임용 때 가슴에 달았던 리본을 모으기 시작한 남씨는 퇴직할 때까지 다양한 의미의 리본을 모았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것에 그는 생명을 주고 가치를 부여했다. 각종 행사장에서 쓰는 리본을 시대별로 모아놓으니 행사 리본을 통해 충북지방의 '행정 홍보사'를 연구하는 귀한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장과 관련된 고서와 희귀본 서적, 독도자료, 6.25자료, 신문자료, 근현대사 자료, 행정자료 등을 정리를 해서 전시회를 열고 싶습니다. 이제는 물량이 넘쳐 더 이상 보관할 장소가 부족합니다. 그동안 모았던 자료들을 우리 고장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평생 고서수집으로 현재 18평 아파트에 자가용도 없이 살아온 그였다.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찾아 전국으로 돌아다녔다. 그의 소망은 단 한 가지다.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우리 고장에 제대로 전시될 수 있는 '책 박물관'이 생기면 모두 기증하겠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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