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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삼대가 살던 친정은 마당이 있는 ㄷ자 기와집이었다. 봄이 오면 우물가에는 흰 매화가 피었고 배꽃이 마당을 환하게 밝혔다. 마당쇠가 빗살무늬를 남기며 바닥을 쓸고 있으면 가랑이 사이로 삽살개가 발자국을 남기며 한가로운 풍경화를 그리곤 했다.

여름밤이면 집 마당에 멍석 세 닢을 펼쳐놓고 나이별로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딸들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어머니가 생 쑥을 베어다 모닥불을 피우면 메케한 쑥 냄새와 연기가 마당을 돌며 모기를 쫓아 주었다. 불타는 쑥 속으로 감자와 옥수수를 넣어 구워주셨던 어머니의 사랑 한 자락도 쑥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일 년 내내 사람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던 마당에서 오빠가 결혼하던 날에는 근동에 있는 분들이 모두 모여 축하를 해 주었다. 그 시절 마당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장소이기도 했고, 비슷한 또래의 아들딸이 있는 분들은 마당이 가교역할을 해서 백년가약을 맺기도 했다. 마당을 지키던 나무가 사계절 철 따라 다른 모양의 나이테를 만들며 서 있듯이 우리 집 마당도 해마다 그곳에 새로운 모습의 나이테를 남겼다.

오빠에게만 한결같은 사랑을 주시던 할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지던 날 친인척들에게 연락을 드렸다. 인사차 방문하는 손님들로 방문이 열릴 때마다 할아버지는 숨소리를 가랑거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셨다.

'도련님 오셨어요!'라고 하는 머슴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를 부르는 오빠 목소리에 할아버지는 눈을 번쩍 뜨시고 바라보셨다. 오빠가 가까이 가서 미음을 세 번 떠 넣어드리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외로 젖히고 숨을 거두셨다. 임종하셨다는 소리와 함께 곡소리로 먼 길 떠나시는 할아버지의 여행길을 알렸다.

출상 전날, 우리 집 마당에서 빈 상여를 메고 발을 맞추며 댓떨이를 했다. 슬픔에 잠긴 상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빈 상여를 메고 선소리에 맞춰 후렴구를 붙였다. 다음날은 행여 안에 고인을 모시고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평소 할아버지가 즐겨 다니시던 친구 집과 친척 집, 그리고 자주 다니시던 길을 돌아 다시 마당 안으로 돌아왔다. 초경, 중경, 종경이라 하여 마당을 세 번 돌고 마지막인 대문을 나섰다. 할아버지는 경상도가 고향이시니 돌아가신 후에 그곳 풍습으로 해 드리는 것 같았다.

마당 귀퉁이 감나무 아래에는 방공호가 숨겨져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공습경보가 울리면 온 식구가 숨어 숨죽이며 목숨을 부지하던 곳이다. 그곳은 할아버지 할머니 가슴에 쇠처럼 단단한 옹이를 박은 곳이기도 하다.

방공호가 답답하다며 집을 나갔던 혈기왕성했던 젊은 삼촌은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삼촌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소천하신 후 작은 아버님이 DNA를 등록하시고도 몇 년이 지나서야 국군 일병으로 전사했다는 연락을 받으셨다. 작은 아버님은 아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에 가 아뢰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걸핏하면 울리는 공습경보에 가슴에 멍이든 방공호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덩달아 바빠지던 마당이 오빠가 태어나던 날은 아마도 금빛 나이테를 만들고 아래로 칠 공주가 태어날 때마다 마당은 무늬 없는 나이테를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고운 나이테와 쇠처럼 단단한 나이테를 번갈아 만들며 3대를 키워낸 마당은 이제 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마당에 새겨진 나이테도 세월 앞에는 장사 없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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