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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세월의 흐름을 요즘처럼 실감 나게 느껴본 적이 있는가· 강산이 다섯 번 바뀐 옛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결혼 후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심드렁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거나 친정집에 다녀오는 게 일과였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남편이 영덕게를 먹고 오자고 해서 마음이 매화꽃이 벙글어지듯 기뻤다.

우리는 점심 무렵 강구항에 도착했다. 가게들은 한가했고 수족관에는 영덕 대게가 몇 마리씩밖에 없었다. 남편은 첫 번째 대게 집에 들어갔다가 금세 나왔다. 그러데, 두 번째 들어간 집에서도 빈자리가 많았는데도 남편이 왜 다시 나오는지 의아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침묵만 흘렀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 남편은 아침부터 내게 어서 일어나라며 성화였다.

"우리 영덕에 가자. 당신이 좋아하는 바다도 보고 고래고기도 사줄게."

속으로 '고래고기는 통영에 있는데 무슨 고래고기!'

나는 지난날의 묵은 부아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못 이기는 척 남편을 따라나섰다.

차가 영덕 대게 마을로 들어가니, 멀리서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도착한 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대게가 있었다.

싱싱한 게를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나는 게 한 상자를 사서 얼음을 채워 달라고 하니 선장이 어머니께 부탁해서 쪄서 주겠다고 했다. 편의를 보아 주겠다는 선장님의 친절에 감사했다.

선장댁에 도착하니 커다란 수족관이 있고 후덕하게 보이는 선장 어머님이 보였다. 큰 대야에 게를 쏟아붓고 수돗물을 가득 채웠다. 10분이 지나서 건져 쪄야 짜지 않고 맛있다고 그동안 바다 구경을 하고 오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들어오는 배도 구경하고 가자미가 줄에 널려있는 것도 구경하다가 한 박스를 사서 트렁크에 실었다.

우리는 영덕 수산시장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했다. 결혼 초 영덕으로 여행 왔을 때 게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가 왜 게를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지금에서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우리 둘이 먹는 영덕게 값이 내 월급의 2달치나 되어서였다고 대답했다.

그 당시 영덕게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던 때였다. 다리가 떨어졌거나 작은 크기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값이 비쌌다. 지금처럼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고 가져간 현금으로든 먹을 수가 없었단다. 그 당시는 자존심 때문에 말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산 세월이 있으니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이야기만 했어도 오해가 없었을 텐데 당시만 해도 신혼 초라 소통하는 법이 부족했다. 남편을 쳐다보니 마음이 시려져서 나도 내가 밴댕이 소갈머리라 미안했다고 했다.

남편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운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맛집을 찾아 맛있는 거 많이 먹자고 하는데 남편을 오해했던 마음 깊숙한 곳에 아물지 않았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어 큰 기쁨이 되었다.

집에 와서 선장 어머니가 쪄준 대게 박스에 붙인 테이프를 뜯으니 아직도 뜨거운 열기나 났다. 첫째와 셋째네 보낼 것으로 단단한 것을 담다 보니 다리가 없는 것도 있고 다리가 부러진 지 오래되어 검은 딱지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눌러보니 흐물거리는 것도 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바다를 둘러보는 사이 오래된 게와 바꿔서 쪄준 것이 확실했다. 배에서 내리던 게는 살이 꽉 차서 눌러 보았을 때 단단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횟집에 가서 직접 회를 뜨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회를 들고 들어오는 친구에게 내가 의심이 많다고 타박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나는 두 눈을 뜨고 후덕해 보이는 선장 어머니한테 속았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신혼 초 영덕 대게로 남편을 오해했던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던 속내를 쏟아내고 보니 큰 기쁨이 되었다. 이제 우리 부부는 봉긋봉긋 꽃눈을 뜨는 매화처럼 생명을 보듬는 봄비 속에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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