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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우리는 시댁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해 먹던 시절이었다. 어머님은 아궁이 옆에도 서지 못하게 하셨다. 혹시 며느리 치맛자락에 불이라도 붙을까 걱정되셨나 보다. 나는 이방인처럼 설 자리가 없었다. 밥상은 형님이 신혼 방까지 가져다주셨고, 설거지라도 하려고 하면 그릇이 부딪쳐 이 빠진다고 손도 못 대게 하셨다.

시댁에서 16일 동안 함께 살고 분가하는 날이다. 이삿짐을 차에 싣고 인사를 드린 후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어머님이 밥도 할 줄 모르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맡기는 마음이 걱정되신 듯 거실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으셨다. 그리고는 거실 바닥을 두드리시며 '우리 아들 밥이나 먹고 출근하려나.'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걱정하지 마세요. 따뜻한 밥 해줄게요.' 하고는 트럭 두 대에 신혼살림을 싣고 출발했다.

시내로 이사와 이삿짐을 내린 다음 점심은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었다. 저녁에는 쌀을 양은 솥에 넣고 후지카 풍로에 올렸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정답게 들렸다.

'밥하는 게 별건가, 쌀이 익으면 먹으면 되지. 어머님은 별걱정을 다하신다.'라고 혼자 종알거렸다. 이제 밥이 되었겠지 하고 뚜껑을 열어보니 죽이 되어있었다. 남편은 처음 해 본 것 치고는 잘했다고 칭찬하였다. 다음부터는 물 조절을 잘하면 된다고 위로했다.

우리는 설익어 설겅거리는 죽을 말 없이 먹었다. 남편이 불평도 없이 먹고 있으니,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목에 넘어가지 않는 죽을 억지로 먹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체했는지 뱃속에서 꾸르륵 요동을 친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밥상을 들고 들어온다.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져 있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설거지를 했다. 씻은 그릇을 마른 행주질 하며 찬장 속에 정리하다 보니 노트가 보였다. '이게 뭐지·' 하고 들춰보았다. 노트에는 점심 거르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밥물 붓는 양과 불 조절 하는 법이 세밀하게 적혀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밥 짓는 연습을 했다. 진밥을 짓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면서 불 조절을 하다 보니 마침내 고슬고슬한 맛있는 밥을 하게 되었다.

깨를 볶는 고소한 냄새가 담장 안에서 춤을 추다가, 담장 밖으로 놀러 갈 때쯤, 몸에 밴 습관이 튀어나왔다. 환경과 풍습이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에 들보가 있는 것은 모르고 남편 눈에 있는 티끌만 보고 불평을 했다. 묵묵히 있던 남편은 어느 날, 서로에게 있는 단점은 고쳐나가고 장점만 보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나는 살면서 난관이 있을 때마다 남편이 신혼 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사람이다. 판단할 일이 있으면 즉석에서 한다. 늘 설익은 밥이다. 그런 내가 남편과 반세기 가까이 살면서 뜸을 들이다 보니 뜸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죽을 먹는 날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거실 바닥을 치시며 당신 아들 밥을 굶기실까 봐 속울음을 우셨던 어머님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얼마 전 며느리를 봤다. 어머님은 내게 오직 당신 아들에게 밥 잘해주는 것만 바라셨는데, 나는 내 며느리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며느리야, 늘 외롭게 성장한 아들에게 서로의 온기로 마음을 가득 채우며 살기를 바란다. 회사 일로 바빠 내 손으로 더운밥 한번 해 먹여본 적 없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얹어 너에게 보내 미안하구나. 나와 함께 한 시간보다 너와 살아갈 시간이 많으니 너희 둘이 서로에게 따뜻한 밥을 해서 섬기는 마음으로 대접하면 좋겠다."

쌀은 신혼이고, 물은 일상이고, 보글보글은 오손도손이고, 뜸은 평화란다.

너희의 시작은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고, 물은 넉넉하고 햇볕도 충분하니, 수확하는 시기를 뜸 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랑이란 밭을 가꾸어 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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