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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유년 시절에 살던 ㄷ자로 된 기와집에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행랑채가 있었다. 방마다 손잡이를 꽃으로 장식한 격자문이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문 창호지에서 통통 북소리가 났다. 바람이 북채가 되어 문종이를 두드렸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는 계절마다 새 문종이를 바르기 위해 문을 떼어냈다. 먼저 문살에 물을 품어 불린 후 먼지 묻은 헌 문종이를 떼어냈다. 문살마다 작은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내고, 닥나무로 삶아 만든 새로운 문종이를 붙여 그늘에 말렸다. 그늘에 말리는 이유는 젖은 문살이 뒤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머니는 문종이가 마르는 순서대로 방에 다시 문을 달았다. 문종이를 새로 바르고 나면 방마다 닥나무 냄새가 풍겨 정겨웠다.

나는, 문종이를 바르는 날, 내 방 문짝은 방에 들여놓았다가 제일 나중에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밋밋한 문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장식하기 위해서였다. 벼루에 먹을 갈아 문종이에 나무와 나뭇가지를 그렸다. 나뭇가지를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오빠 파이롯트 이로시 주크 청색 잉크를 솔가지에 찍어 툭툭 뿌리면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명절 때마다 치마저고리 끝동과 옷고름에 금박을 예쁘게 찍어 만들어 주셨는데 금박을 이용하면 문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나는 서랍장에 있는 금박을 몰래 꺼내와 겨울나무처럼 쓸쓸해 보이는 가지 위에 올려놓고 인두로 눌러 붙였다. 그러면 격자문에 반짝반짝 빛나는 금박 꽃이 피어났다.

나는 결혼하면 띠살문에 문종이를 바르고 지나가는 바람이 장구채가 되어 통통 장구 소리가 나는 집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이면 달님이 노래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기웃거리는 집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문이 많은 집에 살면서도 문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문에 경계가 생겼다. 유년 시절과 달리 학교에 가려고 방문을 열고 나기는 순간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은 높은 문턱뿐만 아니라, 꿈을 꿀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목소리가 좋은 총각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마음을 들킬세라 숨소리조차 문고리에 걸어놓고 열병을 앓기도 했다.

은행에 근무할 때 상무님의 소개로 공직에 있는 남편을 만났다. 무던하고 이해심 많은 그와 일 년을 교제하다가 결혼을 했다. 신랑은 음치인 나를 대신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친구들 앞에서 가수 뺨치게 불러주었다. 감동이었다. 나는 남편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내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남편에게 선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더니 남편이 정년을 5년 앞두고 있을 즈음, 나는 정말 띠살문이 있는 집을 설계하고 완공하여 남편한테 선물했다. 꿈꾸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내가 지은 집에 띠살문을 여닫을 때마다 유년에 살았던 친정집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다가왔다. 격자문에는 지나가는 바람이 통통 북소리를 냈다. 내가 얼마나 그리워하던 소리인가.

칠순을 넘긴 지금은 문을 열고 닫는 것이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하니 꽃살문에 꽃처럼 마음에서도 꽃향기가 난다. 하나둘 내려놓으며 살아가다 보니 문의 경계는 스스로가 만든 벽이었음을 깨닫는다. 행복과 불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 여하에 따라 불행할 수도 있고 행복을 맛볼 수도 있다. 문은 있으나 안과 밖의 경계가 없었던 유년의 날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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