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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담장 주위에 수세미를 심었다. 수세미가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하니 삭막한 담장이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예쁘다.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라 볼 때마다 흐뭇하다.

수세미는 개화하고 일주일이면 오이만큼 자라고 속이 연해서 식용으로 가능하다. 수세미 달인 물을 비단수라 하여 목과 콧병에 도움이 되고 폐가 약해지거나 내열이 있을 때 소염과 해독작용에 좋다. 사포닌이 많이 함유된 수세미는 인삼을 대신하여 죽을 쑤어먹고 기력을 회복하는 노인분들이 많았다. 수세미 성분이 몸에 좋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선조들의 지혜로움에 머리가 숙여진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집집마다 수세미를 많이 심었다. 담장에 가는 덩굴손을 뻗어 어디든 올라가는 수세미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오래전 여물지 않은 수세미를 소금과 식초에 씻어 물기를 닦아내고 토종꿀에 저며 놓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에 있는 친척이 연락했다. 수세미 발효액을 구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는 갑상선 암에 수세미 발효액이 특효라는 이야기를 듣고 백방으로 찾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집에 있는 것을 반 절 덜어 주었다. 일 년 후 친척 내외분이 오셨다. 내가 준 수세미 발효액이 암 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워했다. 수세미를 먹고 갑상선 암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너무 기뻤다.

몇 해 전 방죽말로 연꽃을 보러 갔다. 연꽃 방죽 옆으로 세운 그늘막에는 수세미가 주렁주렁 달려있어 이국적이었다. 활짝 핀 연꽃보다 수세미가 더 보기 좋아 수세미에 흠뻑 빠졌다. 나는 설거지용 수세미를 만들고 싶어 남편에게 두 개만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가 한 소리를 들었다. 남편이 나처럼 수세미에 대한 추억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했다. 아쉽지만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어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수세미는 파종한 지 2개월이 지나면 오이처럼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성숙하면 외가피와 내과피가 건조해지면서 누르스름하게 변해 간다. 이후 4개월 정도 지나면 팔뚝만큼 자란 수세미를 수확할 수 있다. 수세미를 끓는 물에 데쳐서 외과피를 제거한 뒤 잘라 그릇을 씻거나 흰 고무신을 닦았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그 시절에는 들일을 할 때 집에서 쓰는 놋그릇이나 사기 막사발로 이동하기에는 무거워서 박을 심어 박 바가지를 그릇 대용으로 썼다. 모내기나 밭일을 할 때 광주리 가득 박 바가지를 가져가 바가지에 갖가지 나물과 밥 한 주걱을 담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었다. 들에서 먹는 비빔밥의 맛을 어찌 표현할까. 박 바가지가 뚫어지도록 박박 긁어 먹고 나면 빈 바가지에는 고추장 물이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붉은 물이 든 바가지를 밀가루나 밀기울을 풀어 수세미로 닦으면 다시 뽀얀 박 바가지가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쉽게 깨지거나 구멍이 나서 못 쓸 것 같은 바가지를 수세미로 닦아 볕에 말려 꽤 오래도록 썼던 것 같다. 요즘으로 말하면 천연세제에 천연 수세미라서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일등 공신이었지 싶다.

세월이 좋아져 요즘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재질의 수세미가 나온다. 스테인리스 냄비나 녹슨 부분을 닦는 철 수세미는 철을 깎아 먹고 반짝이 실로 뜬 수세미는 세균이 살기에 적당해 자주 소독을 해야 한다. 하나 천연 수세미는 쓰고 나서 햇볕에 말리면 소독이 된다. 또한, 물만 닿으면 금방 부드러운 수세미가 되니 경제적이기도 하다. 밀가루만 조금 풀어 설거지하면 손도 부드러워지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수세미는 생김보다 팔방미인이다. 껍질부터 속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으니 말이다.

요즘 새삼스레 수세미에 빠져 있다 보니 우리 자식들도 수세미처럼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낱 식물인 수세미도 다른 종을 해치지 않고 속까지 내어주어 환경을 살리는데 사람들은 식물보다 나은 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수세미로 밥그릇을 씻으며 오 남매가 수세미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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