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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목욕용품인 의자, 대야, 바가지를 온탕 속으로 밀어 넣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수고했으니 목욕을 시킬 차례가 됐다. 하나씩 꺼내 퐁퐁과 식초 섞은 물에 수세미를 담가 앞뒤로 박박 문질러 놓았다. 탈의실에서는 진공청소기가 도르륵 도르륵 경쾌한 소리를 내며 구석구석 남편을 따라 다닌다. 집에서는 청소 한번 하지 않던 남편이 손님들을 위해 청소를 한다. 아시때를 닦는 것이 끝나갈 무렵 온탕의 물을 빼려고 하수구로 연결된 마개를 빼려는데 잘 빠지지 않는다. 수압 때문인 것 같다. 줄어 들어가는 온탕 속으로 아시닦은 용품들을 둥둥 배를 띄웠다. 하나씩 닦고 찬물에 헹궈 엎어 놓았다. 바가지 하나에 아시때를 닦고 온탕에 다시 넣고 수세미질을 해 퐁퐁이나 식초 성분이 남지 않게 닦고 찬물에 헹굼까지 네 번 손이 간다. 남편은 타일 벽을 꼼꼼히 닦고 수도꼭지 사이사이를 닦는다.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청소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뒤돌아보며 씩 웃는다. 청소하게 된 원인은 남편이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때 청결하게 해 손님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새벽 운동을 하고 운영하는 목욕탕에 들르면서 청소가 미진하게 된 부분을 점검해 메모해 전해준 게 발단이 돼 청소하시던 분이 그만두게 됐다. 욕탕 청소는 세신이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인데 당황스럽기는 세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며칠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돕겠다고 나서서 이틀째 청소를 하고 있다. 원인을 남편이 만들었으니 누구에게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남편은 바닥을 닦고 또 닦는다. 미끄럽지 않게 바닥이 까슬까슬하도록 닦는 성실함은 높이 살만하다. 마무리는 호스를 연결해 거품을 완전히 제거하고 시원하게 벽체까지 샤워를 시켜준다. 바닥은 세 번을 씻어내고 맨발로 문질러 미끄러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소나기 내린 하늘처럼 개운하다. 아주 오랜만에 나란히 서서 샤워를 하며 사그라들던 정이 다시 고개를 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청소하는 분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한 번 오셨던 손님이 다시 오고 싶을 깨끗한 목욕탕이 되도록 몸을 움직여 닦았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남편이 내 허리를 감싸 안는다. '개미허리가 절구통이 되었네. 이번 기회에 개미허리로 되돌려보자. 근육도 단련하고 몸무게도 줄여 건강해지면 일석이조지' 한다. '반세기 동안 살면서 함께 일해보는 건 처음이잖아' 주름진 모습이 안타까운지 안 하던 말을 한다. 우리 부부는 양수 속에 떠다니는 이란성 쌍둥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목욕탕 청소를 하면서 남편은 닦고 나는 물을 뿌린다. 가끔 남편에게 물을 뿌려 장난도 치며 지루했던 일상에서 활력을 찾는 중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아간다. 뚜걱거리던 관절이 부드러워지고 선잠으로 뒤척이던 잠자리가 편안해졌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남편과 둘이 목욕을 시키다가 안고 있던 신생아가 욕조 안으로 미끄러져 빠졌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아이는 지금은 장성해 두 아이의 부모가 됐다. 지금도 물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때 받은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하다. 목욕탕 청소하는 것과 아기 목욕시키는 것은 다른 듯 닮았다. 목욕온 손님이 쾌적한 탕 안에서 안전하게 목욕하고 가실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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