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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소곤소곤 이야기 소리가 정답게 들린다. 가냘픈 아기 숨소리 같다. 아, 봄! 봄빛은 어머니의 품속 같이 따스하다. 비취빛 파릇한 여린 싹이 흙을 들어올리는 소리다. 봄의 전령이 땅속으로부터 오는구나. 양지바른 밭둑에는 쑥이 올라와 있고 냉이도 선을 보였다. 사람의 마음엔들 왜 물이 오르지 않으며 새싹이 트지 아니하며 꽃이 피지 않으며 시(詩)가 뛰놀지 않겠습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 1940년대만 해도 춘궁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가 되면 아이들은 밭둑이나 논둑에 앉아 쑥도 뜯고 냉이를 캐서 끼니에 보태었다고 했다. 아낙들은 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면서, 다리도 다치고 얼굴도 긁히면서 집에서 굶고 있을 식구들을 위해 겉보리가 날 때까지 계속했다고 하니 물이 오르는 봄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시골 부모님 집을 건축해 달라는 의뢰였다. 따뜻하고 편안한 집에서 사시게 하고 싶다고 했다. 효심에 감동하여 허락했다. 단층집을 짓다가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와도 생각지 않게 인연이 되었다.

어미 닭이 품었던 달걀을 부리로 콕콕 쪼는 소리와 함께 삐악삐악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왔다. 아직은 낯선 듯 비틀거린다. 초롱 속에 부직포를 깔아 따뜻하게 해준 다음 병아리를 옮기고 좁쌀을 넣어주면 콕콕 좁쌀 찍는 소리가 악기 소리처럼 정답다.

병아리들이 모여 온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다. 30년 전 일이 생각났다. 건설현장에 쌓아놓은 자갈 더미에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던 남매를 만났었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돌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이름은 뭐냐고 물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더 큰소리로 물었다. 건축주가 나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집에 있는 막내딸과 비슷한 또래 같아서 말을 거는 중이라고 했다. 나에게 손짓으로 부른다. 옆집에 사는 아이들인데 여섯 식구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청각장애인 가족이라고 했다.

여자애의 할아버지를 만나 내가 데려가고 싶다고 하니 거절을 하신다. 나를 믿을 수 없다고 하셨다. 심부름하는 아이로 데리고 가려나 생각하셨나 보다. 건축주가 보증을 서서 겨우 청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비인후과에 데려가 검사를 하니 정상아라고 했다. 가족이 말을 안 하니 혀가 굳어있을 뿐이라고 했다. 내 아이 일처럼 기뻤다.

막내딸이 다니는 사직동에 있는 어린이집 원장님께 부탁을 드려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남편은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데려온 전후 사정을 듣고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게 한 달을 불편하게 보냈다. 막내딸이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 말을 가르쳤다. 한 달이 되니 세 살 정도의 아이만큼 말문이 열렸다. 아이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아~ 하며 인사를 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안겼다. 예쁜 짓을 하니 남편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토요일마다 여섯 명의 아이들을 세신사에게 부탁해 목욕을 시켰다. 아이를 데려온 지 두 달 정도 되자 눈만 반짝이고 구릿빛 피부였던 아이는 조금씩 도시아이로 변해갔다. 막내딸과 같은 원피스를 사서 입히니 동네에 딸 부잣집에서 밖에서 딸을 낳아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편에게 미안했다.

아이의 작은 엄마가 찾아왔다. 조카딸이 잘 있나 보러 왔단다.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사촌끼리 정도 쌓고 토요일마다 데리고 가서 목욕도 시키고 일요일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두 번 목욕을 시키고 데려와서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시골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이제 말문이 열려 재잘거리는 아이를 보내기에는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선납한 유치원이라 연말까지는 데리고 있다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이를 시골로 보냈다.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얻는 마음으로 막내딸과 함께 대학까지 보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는 생각이 짧았다.

어느덧 고희에 이른 세월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봄이 오고가도 뒤돌아보면서 후회하는 일이 많다. 주차하는 소리와 대문 여닫는 소리에 창밖으로 눈이 간다. 꽃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여섯 명이 움직이는 꽃으로 내게 다가온다. 봄꽃과 인 꽃이 어울려 방실거린다. 잔디가 파릇한 마당 안은 금세 생기가 넘쳐난다.

살랑대는 미풍도 좋고 아이들 가벼운 옷차림도 좋다. 세월 속에 저물어가는 나도 꽃이 되는 계절, 그 애도 기억하고 있을까? 나와 여섯 살짜리 그 애와 인연이 되었던 지난날의 봄이 회상되었으면 한다.

이 시간 제 살을 열고 꽃을 피우는 매화와 눈 맞추며 뜰 안에는 향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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