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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약수 온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았다. 몸은 가볍고 얼굴은 윤기가 나고 마음도 산뜻해졌다.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는 참새들이 낟알을 쪼고 있다. 붉은 사과가 달려 있는 과수원에 들러 손자 손녀에게 먹일 사과 한 상자를 차 트렁크에 실었다.

우리 차가 신호등 정지선에 멈춰서 있을 때였다. 뒤에서 갑자기 쾅 대포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차가 앞으로 밀리면서 몸은 운전석 쪽으로 쏠렸다가 목받이 쪽으로 넘어갔다. 목을 들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남편 얼굴을 바라보니 핏기가 없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나는 X-ray를 촬영했다. 사진상으로 뼈는 다친 데가 없다고 했다. 혈압이 230까지 올랐다. 목뼈를 다쳤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란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다행이라고 할까 남편은 그저 타박상이라니 안심이 됐다.

집으로 돌아와 입원 준비를 하고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먼저 청심환을 처방해 주고 계피차로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약침으로 목과 어깨 쪽으로 내려오며 침 치료를 했다. 입원실로 올라오니호텔 방처럼 깨끗하고 아늑하다. 6평 되는 입원실은 양쪽으로 옷장이 각각 있다. 우리 부부가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취침하려니 불편한데 병원에서 처치해 주는 대로 해야 뒤탈이 없을 것 같아 불편함을 감수하고 밤을 보냈다.사람이 살면서 한 치 앞도 모르는데 어찌 내일 일을 알겠는가· 운전도 혼자만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손목이 뒤늦게 시큰거린다. 교통사고는 2~3일 후에 증상이 나타난다더니 앞으로 쏠리면서 부딪친 것 같다.50년 남편과 함께 살면서 24시간 입원실에 갇혀있기는 처음이다. 남편은 입원해 있는 동안 치료받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신문을 눈에서 떼지 않았다. 심심한 남편이지만 옆에서 자상하게 보살펴주니 고맙다. 우리 부부 중한 사람이 잘못되고 혼자 남았다면 어땠을까. 누워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새벽에 남편은 운동하러 나갔다. 입원해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걷기를 하는 남편의 성실함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혼자 있는 새벽 나를 스캔하는 시간을 가졌다.50년 동안 숨이 차게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 같다. 골인 지점에 도착하고 보니 나는 속이 빈 강정처럼 육신이 하나씩 망가져 간다. 몸은 생각지 않고 그저 내일만 생각하고 달려온 결과이리라.그때는 내 아이들과 가족의 앞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몸이 부서지고 곯는 것도 몰랐다. 하나 그 덕분에 지금 노후를 편하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거리 달리기를 끝내고 보니 살면서 숨 고르기도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는데, 정기적으로 물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나무의 옹이처럼 부딪친 곳마다 통증으로 고생할 수 있다고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기회에 쉬엄쉬엄 치료도 받고 살살 걷는 운동도 하며 건강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퇴원하면서 묵은 짐도 정리하며 단출하게 사는 연습도 해야겠다. 6평 입원실에서 지나는 동안 불편한 것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사고로 쉬어 가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무거운 짐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고 단순한 것이 좋다는 것도 깨달았다.그날의 기억이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 힘든 깔딱 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만 넘으면 새 생명이 움트는 새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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