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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수필가

새벽 3시 현관문을 나섰다. 모두가 잠든 밤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얀 이불로 덮어주었다. 장독 위에는 시루 속에 쪄 놓은 백설기처럼 소복소복 눈이 쌓였다. 층층이 쌓인 눈을 보니 갑자기 엄마가 돌절구에 빻아 쪄주시던 백설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재작년부터 큰 딸이 경영하는 카페다.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페 노상주차장에 쌓인 눈 위에 누워 보았다. 눈 위에 내 모습이 찍혔다. 누가 보면 곰이 놀러 왔다 갔나 싶을 정도로 둥글둥글하다.

넉가래로 치우기에는 눈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남편과 동시에 생각해 낸 것이 눈을 뭉쳐 굴려보자고 했다. 우리는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남편 손에서 태어난 눈덩이는 맏손녀 얼굴만 하고 내 손에서 만들어진 눈덩이는 손자 얼굴만 하다. 눈이 공처럼 모양을 잡아가니 굴릴 때마다 손자 손녀가 쑥쑥 자라나듯 눈덩이가 몸집을 불렸다. 두껍게 입었던 윗옷은 벗어놓고 장갑만 끼고 굴리는데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 뒤로 땀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허리 높이의 커다란 눈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나 역시 내 허리 높이의 눈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부부는 일심이라 했던가. 화단 양옆으로 커다란 눈덩이를 앉혀 놓았다. 아직 주차장 안에는 눈이 반 이상 남아있었다. 순간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남편이 먼저 눈을 뭉쳤다. 나도 덩달아 뭉쳐 우리는 다시 함께 눈으로 공을 굴려 나갔다. 아래에 앉혀 놓은 눈덩이 절반만 되도록 굴려 아래 눈덩이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손자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남편 눈덩이를 둘이 들어 올려놓으니 양쪽에 예쁜 눈사람이 태어났다.

유년 시절 밤에 눈이 내리는 날에는 머슴이 일어나기 전, 우리 형제들은 새벽에 일어나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었다. 엄마 눈사람 위에는 망토를, 아버지 눈사람 위에는 중절모자를 올려놓았다. 솔가지로 눈썹도 만들고 수염도 꽂았다. 숯으로 눈을 만들고 홍고추로 입술을 만들면 영락없이 멋쟁이 우리 엄마 아빠 모습이 만들어지곤 했었다.

나는 전지가위로 카페 옆에 있는 잣나무 가지를 잘라 예쁜 손녀의 단발머리를 만들었다. 손자 머리 위에는 듬성듬성 꽂아 더벅머리를 만들어 놓았다. 눈썹은 솔잎으로 만들고 눈은 숯덩이, 입에는 붉은 고추 두 개를 엇갈리게 꽂으니 영락없이 예쁜 손녀 모습이 되었다. 아침 8시가 되니 내리던 함박눈은 멈추고 햇살이 비치는 온 세상은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듯 반짝거렸다.

매섭던 날씨가 서서히 풀리더니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동화 속에 잠자고 있었던 소녀가 빗장을 열고 나온다. 눈사람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까르르 즐거워했던 우리는 백설 공주의 모습처럼 순수했었다.

유년을 회상하다 보니 카페 주차장에 도착했다.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진다. 눈사람 위에 꽂혔던 잣나무 가지가 튀어나오고 검은 숯덩이 눈이 빠져나왔다. 눈사람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니 볼품없이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해 마음이 허전했다. 사라진 눈사람한테서 잣나무 가지와 숯 그리고 홍고추를 수거하면서 임종한 내게서 수세를 거두는 아이들 모습이 슬펐다.

눈이 왔다고 눈사람을 만들고, 푹한 날씨에 눈사람이 녹았다고 이렇게 마음이 울적해지다니, 나도 이젠 늙었나 보다. 하긴 일흔 중반에 들어섰으니 적은 나이는 아니지. 그래도 내가 힘이 된다면 남은 날들을 자식들 도와주며 열심히 살아가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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