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신미선

음성문인협회 사무국장

'설날'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명절 기간 며칠이 몇 년처럼 몸도 마음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니 후유증으로 몸살이 왔다.

다행히 대체휴일이 있어서 온종일 집 안에서 쉼의 여유를 가져본다.

집 안을 치우는 일도 잠시 뒤로 미루고 며칠 동안 기름진 음식으로 배가 불렀으니 한 끼 정도는 거르는 것으로 속도 비워본다.

고단한 명절 주간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명절 앞 며느리들의 최고 숙제는 아무래도 음식 준비 아니겠는가.

직장생활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할 형편이니 절반은 집에서 직접 준비하고 절반은 근처 대행업체에 손을 빌렸다.

유년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며칠 전부터 분주해지셨다.

집안을 쓸고 닦는 일부터 음식 장만하는 일까지 오롯이 혼자서 그 많은 일을 다 해내셨다.

직접 가마솥에 장작불로 조청을 만들고 한 해 농사지은 땅콩과 참깨를 곁들여 엿을 고았으며 손두부도 만드셨다.

오일장이 서면 옥수수를 한 말씩 머리에 이고 나가 뻥튀기를 튀겨오고 전날에는 떡방앗간에 들려 가래떡을 빼 오셨다.

장손 집 맏며느리로 손에 물 마를 새 없었던 바쁜 엄마였지만 가족들이 먹는 음식에 더 없는 진심을 보여주셨다.

성인이 되고 사회로 나아가 일에 묻혀 바쁜 와중에도 명절이면 꼭 먹던 그 맛은 어느새 든든한 기억이 되었다.

결혼해서는 큰집으로 명절을 쇠러 갔는데 꼬박 이틀을 시댁 형님들과 음식을 만들었다.

집 안의 막내며느리라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기를 이십여 년.

시어른들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큰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댁시절이었을 때에는 그저 어려운 층층시하 시댁이라 명절이 고단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짬짬이 음식솜씨가 늘었다.

음식 만드는 일에 익숙한 이유는 종갓집 맏며느리의 삶을 반세기 넘게 사셨던 친정엄마를 보고 자란 덕분도 있다.

특히 김장김치와 톡 쏘는 맛이 일품인 갓김치를 다져 넣고 만두를 빚어 온 가족을 둘러앉혀 떡만둣국 한 그릇으로 명절 전야를 풍성하게 해주셨다.

돌아보면 그때 그 만둣국 한 그릇은 세상을 살아가며 텅 빈 속을 채워주는 든든한 지지대였다고나 할까.

가끔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삶이 어려질 때 그 맛이 생각나곤 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내용의 절반 이상이 먹는 이야기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임진년에 시작해서 정유년에 끝이 나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적다.

일기 대부분이 누군가와 음식을 먹고 기운을 내는 그런 이야기 일색이다.

전란(戰亂) 중에도 고비마다 힘들고 버거워 모두 내려놓고 싶을 때는 전년도, 그 전년도의 기록을 찾아보며 그날 누구와 무엇을 먹으며 위기를 넘겼는지 살펴본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이순신 장군을 우뚝 서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명절을 보내고 모두가 떠난 텅 빈 집안에서 혼자 망중한을 즐긴다.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시어른들께서 돌아가며 따뜻한 말 한마디씩 얹어주셨다.

피로감이 눈 녹듯 사그라든다.

혼자 서울살이하며 혼밥에 익숙했던 아들이 내려와 갈비찜과 잡채를 아주 맛있게 먹고 올라갔다.

그간 부실했던 속을 잠깐이나마 채워 준 것 같아 마음이 좋다.

옆에서 묵묵히 자잘한 도움으로 집안의 울타리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남편과는 저녁에 조촐하게 술안주를 차려놓고 맥주 한 잔씩을 주고받아야겠다.

이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제 새해를 시작할 일만 남았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임세빈 NH농협은행 본부장 "매력있는 은행 될 수 있도록"

[충북일보] "농업인과 고객들에게 든든한 금융지원을 통해 지역금융 전문은행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겠습니다." 임세빈(54) NH농협은행 본부장의 취임 일성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임 본부장은 취임 후 한 달 간 도내 곳곳 농협은행 사무소 현장을 방문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임 본부장은 "농업·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농촌의 어려운 현실과 더불어 대외경제 불확실성 확대, 경기둔화로 국내 투자와 소비 위축 등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농협은행은 농업인과 고객들에게 든든한 금융지원을 통해 지역금융 전문은행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본부장이 강조하는 농협은행의 운영 방향은 '고객이 먼저 찾는 매력적인 은행'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세 가지 운영방향을 수립했다. 먼저 국가의 근간 산업인 농·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신규 여신지원·금융컨설팅 등 금융 지원을 확대한다. 이어 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실질적 금융 지원을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고향사랑기부제 등 농업·농촌을 살릴 수 있는 활동을 적극 추진해 도시와 농촌 자본을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