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분의 초대로 영월에 라운딩 가는데 이동 중에 벌써 땀이 나도록 덥다. 티업이 한 시간 정도 남으면 대개 건조한 이야기로 긴장된 마음을 추스른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아직 못한 에이지 슈터(자기 나이대로 타수를 치는 것)를 여러 번 한 고수 친구가 싱글 골퍼의 매너를 조언했더랬다. 골프장에 허겁지겁 나와서는 절대 실력발휘를 못하며, 퍼팅 연습에 골프장 그린이 최고이니 라운딩 경우 연습 그린에서 퍼팅으로 거리감을 조율하고 스윙 등으로 충분히 몸을 푼 뒤에 필드에 나서야 한다. 전반 후 쉬는 시간에도 그늘 집에 가느니 퍼팅 연습이 좋다는 거다. 그 말대로 연습 그린에서 라인을 그리며 이마의 땀이 눈에 들어갈 만큼 퍼팅 연습을 한 뒤에 드라이버 레인지에 가서 몸이 더워질 정도로 스윙 연습도 마치고 드디어 1번 홀에 섰다. 첫 홀에서 긴장하지 않는 골퍼는 없다. 공이 똑바로 잘 나갈지 집 밖으로 나가 무참하게 될지 연습 정도에 따라 불안하거나 부담감으로 티 박스에 서게 된다. 티샷준비를 하고 서 있는데 캐디가 옆에 와서는 나지막하게 '노력형이시군요'라 한다. 챙 넓은 모자에 온 얼굴을 싸매어 오직 눈만 빼꼼한데 보니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여 필시 50줄에 들어선 아줌마일 게다. 아무리 경험 많고 연륜이 깊은 캐디일지라도 처음 보는 사람을 어찌 한눈에 간파한단 말인가. 불현 듯 교감 때에 모 강사가 주최하는 모임에서 강남 M보험사의 지점장이 수인사를 나누고 금방 천주교 신자이시군요라 한다. 음 묵주반지를 끼고 있으니 그야 당연한 건데, 10여분 지나 나의 혈액형을 정확히 짚어 놀랐던 일이 떠올랐다. 사람 살피기야 선생도 만만치 않은데 놀라는 나에게 척 보면 안다는 이 캐디를 보니 임자 제대로 만났다. 덕분에 첫 홀에 좌우 OB로 볼 3개 잃어버리는 최악의 불상사를 시작으로 9홀 동안 와이파이로 공을 날리곤 주변 경관 살필 겨를도 없이 공 찾느라 덤불 속만 헤맸다. 오죽하면 캐디가 로스트 볼 10개 들이 한 봉을 주며 여기 처음 오면 대부분 볼 많이 잃어버린다고 다독였을까. 이렇게 한두 개도 아닌 봉지채로 볼을 주는 희한한 캐디도 처음이다. 나도 사람 잘 기억하기로 소문이 났고 자타공인으로 사람의 특징을 잘 짚어내는 편인데 강적이다. 지인지감(知人之鑑)은 대단한 능력이요, 인사가 만사라고 사람의 능력을 살펴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할 수 있으면 아주 훌륭한 관리자인데 진행과 응대가 보통이 아니다. 알고 보니 그 골프장에서 제일 실력과 친절한 사람이라 부러 모신 캐디란다. 그래도 그렇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노력형을 간파 당한 나는 또 뭐람. 아니! 전반 홀을 마치고 카트에 앉았는데 연습 그린장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러면 라운딩 채비를 하던 캐디는 퍼팅과 스윙연습으로 한 시간 여 보낸 나를 보고 인사차 가볍게 던진 말이었고, 처음 보는 여인에게 속을 들켰다 여겨 당황한 나는 멘탈만 흔들린 거였다. 덕분에 전반 홀은 발전을 위한 노력을 어떻게 했던가! 인생 여정을 살피는 기회였다. 송충이가 기어가는 잔디밭을 고개 숙이고 골똘히 걸었고 부지기수로 공을 날렸고, 사람은 속이 깊어야 하는데 하며 자성한 시간이었다. 노력이야 어디 나만 했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관리에 노력을 들이며 사는 건데 놀란 나머지 너무 신중하게 받아들였다. 옛 선인들이 소학(小學)으로 예를 갖추고 하루를 경재잠으로 시작하여 제수염족으로 마침도 노력이요 지독한 자기 수양이니 고금을 막론하고 노력은 기본이라. 라운딩을 마치고 퇴근하려는 직원에게 캐디 평가표를 부러 달란 뒤에 각 항목별 최고점인 5점에 'best of best Course manager'라고 써서 김 캐디에게 보답하였다. 천상 노력은 계속해야겠다.
요즘 언론에 민낯이라는 말이 자주 보이고 헤드라인 기사로도 등장함을 보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꾸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통상 잘 알려지지 않고 있던 불의가 모종의 이유로 밝혀졌을 때 '~의 민낯'과 비슷하게 쓰인다. 분명히 민낯은 저명인사의 감추려던 것이 드러났을 때 비판적이거나 비난의 의미로 사용되던 단어였다. 이제는 부끄러운 느낌도 아닌 본래 모습 정도의 관용적인 의미로도 쓰임을 보면 그만큼 우리도 잘못에 무감각해지고 둔감해져 가는 건지, 아님 잘못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기 때문인 듯 불안해진다.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1891년 4월에 발표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영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이 모티브인데 더불어 인간의 민낯이 거론되기도 했다. 도리안의 젊고 윤기 흐르는 싱싱한 볼과 건강한 외모, 품위 있는 유머와 고매한 사상으로 반짝이는 눈을 그린 초상화가 나이 먹고 추악한 인생을 사는 주인의 감추고 싶은 흉악한 모습을 초상화가 담아간다. 이를 알게 된 도리안은 추악한 초상화를 남들이 볼까봐 다락방에 잠가 버리지만 급기야는 보기조차 역겨울 정도로 변해버린 초상화를 칼로 찢어버리려 한다. 이윽고 원래대로 돌아온 초상화가 늙고 추한 모습으로 칼에 찔려 쓰러진 주인공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영국의 맥스 비어봄(Max Beerbohm)이 1896년에 발표한 '행복한 위선자(The Happy Hypocrite)'라는 장편 우화는 이와 대비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로드 조지 헬(Lord George Hell)은 이름이 주님에서 악마로 타락한 듯 많은 악을 자행하며 점차 얼굴도 흉물스러워져갔다. 어느 날 아름다운 처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그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가 흉측한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성자의 가면으로 위장하였다. 가면 덕분에 결혼하고는 감사한 마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아내를 사랑했다. 몇 년 후, 과거에 헬과 사귀었던 여자가 그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앙심을 품은 여인은 아내와 함께 있는 헬에게 "어서 그 가면을 벗으라!"고 닦달했다. 마침내 가면이 벗겨졌는데 가면 뒤에 감춰졌던 얼굴은 더 이상 흉측한 얼굴이 아니라 진짜 성자의 얼굴로 변해 있더란다. 사랑으로 선하게 변한 민낯의 경우이다. 계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와 계모의 얼굴이 닮아졌다는 둥, 마음을 합하려 노력하고 살아온 부부의 외양이 닮는다는 소리도 이와 비슷한 예이리라. 개인적 측면에서 본 민낯은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아니라 나의 참된 자아(my true self)를 말하는 것으로 표리부동하지 않은 삶으로 멀리서 이건 가까이에서건 항심으로 생활한다면 이게 바로 민낯이라. 그저 생긴 대로 살고, 드러나도 부끄럼 한 점 없으면 그게 생얼굴이다. 사회적 측면에서 본 민낯이라면 눈 찢기 등으로 동양인을 비하하더니 코로나 팬데믹에 우왕좌왕하며 사재기 광풍에 정부에서 자제해 달라고 애원하지를 않나. 뒤늦게 도와달라고 손 벌리는 모습이 바로 선진국입네 하던 서구 사회의 민낯이겠다. 코로나 와중에 그 나라 정신문화의 심도가 얼마나 깊은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더불어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이 힘을 얻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뿌리 기픈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듯 퇴계선생을 천원권 화폐의 표지 인물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신문화야말로 이 상황에서 다시금 새겨볼 생얼이다. 서양인들이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여 상대를 안심시키는 인사가 악수일진대 코로나 이후 주먹이나 팔꿈치를 치는 대신 우리 선비들의 전통 인사법인 공수례로 인사를 한다면 이것도 온고지신의 또 다른 깊이가 되겠다.
n번방 사건으로 언론이 뜨겁더니 사안 자체가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 구속된 사람의 얼굴 등 신상이 드러났다. 피의자 신상공개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8조의2, 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따라 해당 기준을 충족할 경우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다.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자는 여론으로 2010년 4월에 해당 규정이 신설됐다. 얼굴과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sns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의 명예 체감도가 신상 털기보다도 더 무서우니 사형 다음으로 가혹한 형벌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내 몸의 모든 것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 배웠기에 참수형을 더 끔찍이 받아들였다. 서양과 일본처럼 군사문화가 기반인 나라에서는 참수보다 교살을 치욕으로 여겼다 하니 동서양 문화 인식에서 명예의 존중 정도가 이렇게 달리 나타난다. 처형 중의 하나인 팽형 관련 사례가 초한지에 여러 차례 나온다. 유방과 항우는 의형제를 맺었지만 천하를 두고 싸우는 처지가 된다. 광무산 전투에서 항우가 유방의 아버지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뒤 당장 항복을 하지 않으면 네 애비를 팽살할 것이라고 어르자 유방은 껄껄 웃으며 내 아버지가 그대 아버일진대 정히나 그리하려거든 나에게 국물이나 한 그릇 나누라 대꾸한다. 전 싸움에서 항우에게 패한 뒤 추격이 급하자 같이 타고 있던 두 아들을 수레 아래로 세 번이나 밀어 냈던 사람임에도 배포가 큰 아들 덕에 그 아비 패공은 형을 면했다. 유방의 참모이자 세객으로 제후들을 설득하여 끌어들이는 외교 활동으로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운 이기 역생(酈生)은 팽형으로 최후를 마쳤다. 제왕(齊王)을 한에 복속하도록 설득하고자 머물다가, 그의 공을 시기한 한신이 제를 침공하는 바람에 속았다고 여긴 제왕 전광이 분노한 나머지 삶아 죽이라 명하였다. 이때 역이기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제왕을 어지러이 욕하였다고 한다. 중국은 이렇듯 군주의 분노 정도에 따라 팽형이 시행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금횡령, 뇌물수수를 저지른 탐관오리에게 팽형이 구형된다. 그런데 양상이 중국과는 다르다. 형이 결정되면 우포도청 앞 혜정교에서 정확(鼎鑊)이라 하는 가마솥의 물을 미지근하게 끓인 뒤에 수형 죄인이 솥에 들어가 몸만 적시고 나온다. 가마솥에서 나온 죄인은 죽은 것처럼 상여에 실려 집으로 가는데, 온 집안사람들도 죽어 돌아온 사람처럼 통곡으로 맞이한다. 죄인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흰옷을 입은 채 집안에 감금당하는데 친척들과 벗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여 발길을 끊어버린다. 어쩌다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도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집에서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며 밥도 상식(上食)처럼 넣어준다. 팽형을 선고 받을 경우 죄인에게는 형을 그대로 받거나 자결을 하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자결을 하면 그래도 복권은 가능하지만 형을 받는다 하면 후일 억울함이 밝혀져도 복권이 안 된다. 우리나라의 팽형은 명예의 영원한 죽음이 되는 셈이요, 그만큼 조선 시대는 이름과 명예를 존중하는 사회였다. 조주빈과 갓갓의 신상이 언론에 드러남에 조선의 팽형제가 연상되어 살펴보았다. 외양이 양순해 보이는 때문에 이들의 표리부동한 생활 자세가 더욱 경악스럽다. 전도양양한 사람의 신상을 공개할 정도의 죄질도 문제려니와 젊은이들의 인성이 나빠지는 것은 커다란 사회고민이요 우리의 숙제다.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보전하는데 막중한 책임을 가져야 하며, 삼척동자라도 알 일을 끝까지 아니요와 모르쇠로 발뺌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은 건강하지 않다. 건전한 사회는 명예를 중시하는 만큼 우리 사회도 더욱 건강해져야한다.
동료 교사의 워크맨으로 수제천을 듣자마자 국악이 좋아져 김중섭 선생의 카세트테이프가 너덜해지도록 단소를 독학하곤 고불 맹사성께서 평생 즐겼던 대금을 잡게 되었다. 이후 기회 될 때마다 국악 공연을 보러 다녔고 혹 서울에 1박2일 출장이라도 있으면 국립국악원 공연 일정을 살펴 예술의 전당을 기웃거렸다. 전문역량 강화 1주일 연수는 국악원의 입맛 당기는 프로그램과 일정을 조율하여 다른 연수생들은 저녁에 술잔 기울일 때 나는 연주회 관람석에서 정신을 모았다. 한번은 국악원 가는 시내버스에서 지갑에 차비 천 원짜리가 한 장도 없다. 기사가 문을 안 열어주어 승객들에게 천 원짜리 열장 있는 분계시냐 다급히 묻자 마음씨 착한 어느 아주머니가 한 장을 주어 간신히 내린 일도 있었다. 국악의 한 분야에 최고의 경지를 이룬 사람에게 명인·명창이라 부르며 관람 능력이 뛰어난 아마추어를 귀명창이라고 한다. 열심히 공연장을 드나들다보니 나도 어느새 국악기의 음색 구분을 넘어서 악사의 연주 기량까지 살피고 있다. 어느 악사가 박을 잘못 짚어 조금 일찍 나오는지 아니면 뒤늦게 허겁지겁 판을 따라가는지도 보인다. 이게 오히려 음악 흐름에 몰두를 방해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들리고 보이니 바야흐로 귀 명창 지근에는 들어섰다보다. 국악에는 '시나위'라는 즉흥 기악합주곡 양식의 연주가 있다. 가야금·거문고·해금·아쟁·피리·대금 등의 악기들이 육자배기 장단 안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데도 산만하거나 불협화음으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시나위를 "부조화 속의 조화", "혼돈 속의 질서"라고도 한다. 대개 시나위 무악권(巫樂圈)으로 불리는 경기 남부·충청 서부·전라·경상도 서남부 지방의 무가(巫歌) 반주 또는 무당의 춤 반주의 남도 계면조 음악에서 유래를 찾는데 육자배기토리 허튼가락과 육자배기 태평소 허튼가락도 시나위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무의식(巫儀式)의 음악이 무대화된 기악 합주곡을 시나위라 하며, 원래는 각 분야의 고수가 즉흥 연주로 앙상블을 이루는 것인데 지금은 정형화된 시나위를 연주하고 있어 예전의 즉흥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명인도 귀하거니와 40대 초반 약관의 연주자들이 마련된 악곡을 연습하여 무늬만 시나위로 무대에 올리는 용기를 보기도 한다. 시나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연주자의 기량과 즉흥성이다. 국악에서 충분한 내공을 쌓은 뒤에 기량이 원숙해진 사람을 득음(得音)하였다고 평한다. 평생 한 길에 정진하여 가히 득음의 경지에 오른 어르신들이 악기를 잡고는 떠오르는 대로 손이 가는대로 연주를 한다. 처음에는 화합이 어려우나 연주가 이어짐에 따라 점차 아름다운 조화가 어우러져 관객을 감동시킨다. 탄탄한 기량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연주에 휘둘리지 않으며, 만약 흔들리게 되면 좌중까지 불안해진다. 감흥을 충분히 녹여낸 바탕에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들으며 즉석에서 연주 내용을 뭉쳐가는 것이니 기량이 우선이요, 동반 악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따라야 한다. 정해진 박이 없어 일러도 되고 늦어도 상관없다. 음악을 들을수록 사전 협의 없이 다른 악기와 연주자가 살갑게 맞아 들어가는 과정이 신비롭다. 지휘자가 버티고 끌어가는 서양 음악가들이 보기엔 혀를 내 두를 일이다. 시나위는 같이하는 악사의 기량을 존중하며 판에 깔리는 음악 흐름에 맞춰가는 것이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상대가 변하는 것을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도 따라오듯이 시나위 마당에서는 더 높은 수준을 향한 상호 변화가 관건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의 인격과 수준을 인정하며 특히 전문가를 존중하면 덩달아 자기도 발전한다. 전문가는 치열한 자기 수련으로 이룩되므로 아이들을 전문가로 키워주도록 사회 배경이 탄탄하고 안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에 노력을 들이는 사람 숫자와 부분 선진국에서 온전한 선진국에의 도달시간은 분명 반비례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한번쯤은 마당 있는 주택에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산책 길에 이따금 보이는 마당 파아란 집들은 낭만과 여유 자체로 보여 날이 갈수록 단독주택에의 열망이 커져갔다. 꿈이 생생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드디어 고즈넉한 외양에 마당의 반송도 훌륭한 집이 나타났다. 『5백년 명문가의 내력』에서 명문가는 문필봉을 대하고 마당에 너른 바위가 있다던데 파란 잔디에 놓여있는 마당바위에 다른 것은 더 볼 것도 없다. 저 바위 위에서 아내랑 차도 마시고 앉아서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보면 좋겠다 여겼다. 실상 극성스러운 모기가 훼방을 놓기는 하나 이따금 마당의 잡초를 뽑느라 아픈 허리를 바위에 누이고 하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유럽을 서너 번 다녀본 뒤에 지었다더니 내장재도 잘 썼고 마감도 훌륭하다. 한 여름 더위에 창문 활짝 열고 자면 원두막 같고, 창문으로 가을 달빛을 한 아름 들이고 잠들면 광한루가 되는 이 기쁨. 그런데 옷방 구석에 놓인 금고가 전혀 안 어울린다. 평생 책만 가까이 하며 理財에는 문외한인 백면서생에게 금고는 도대체 어불성설이요 몸 하나에 달랑 가방 하나로 장가들어 예까지 온 사람에게 사치품일 뿐이다. 크기는 성인 하나가 구겨 들어갈 만하고 무겁기는 장정 여나 뭇이 들어도 꿈쩍 않는다. 전 주인이 두고 간 것도 신기하지만 이삿짐센터 사장에게 혹 필요하면 가져가시라 하자 너무 무거워 잘못하면 사다리차만 부서진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는 수 없이 가구의 하나로 놓고 있으려니 슬몃 안이 궁금해진다. 열쇠도 없고 비밀번호도 몰라 전문가를 불러 불요불급하게 돈을 넣을 처지도 아니라 금고 여는 비용만 공연하니 아내 말대로 자주 쓰는 물건이나 올려두고 그냥 쓰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금고를 깔고 앉은 사주팔자라 하던데 혹 내 사주에 금고를 끼고 살 팔자가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옷 방에 들어갈 적마다 눈에 걸린다. 마치 양복입고 갓을 쓴 듯 예복에 운동화를 신은 듯 어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저 물건이다. 혹 저 안에 이상한 게 들어있지나 않는지, 괴기소설처럼 사랑하던 여인을 위하여 지었다는 이 집의 누군가가 백골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흔들어 볼 엄두도 못 낼 등치를 보면서 발칙한 상상까지 든다. 일본 사람들은 금리가 낮은 은행을 믿지 못하여 가정에서 금고를 사용한다고 한다. 쓰나미 때 이 금고를 노리고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찰당국이 진땀을 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에는 매몰된 점포의 금고를 노린 사람들이 떼거지로 붕괴 현장을 찾았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었다. 이렇게 금고는 돈이 있는 사람을 위한 물건인데 아무리 봐도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설사 돈이 없으면 귀중품이라도 넣어야겠는데 그만한 귀중품은 더더욱 없다. 반소사음수하고 곡굉이침지라도 낙역재기중(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신 뒤에 팔을 베고 누웠으니 그 가운데도 즐거움이 있도다)이라는 논어 위정편의 구절을 읊고 살았는데 사장도 아닌 선생이 생뚱맞게 대형 금고를 끼고 살게 되었으니 우습다. 마침 내부 인테리어로 가구를 전부 들어내는 김에 사장에게 금고를 치워 달라 부탁하였다. 장정 여러 명이 와서 간신히 금고를 들어내어 크고 튼튼한 사다리차에 실어 내리는데 몇 년 동안 쌓였던 밑의 먼지까지 예뻐 보인다. 한때 주인의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았던 놈이 집 뒤 산록에 버려져 이따금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다가 길냥이의 놀이터가 되기도 함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소용이 되기를 바랐다. 얼마 후 고물상 이나 누군가가 가져갔는지 안 보이니 그제야 홀가분하다. 금고도 없는 단출한 집이 되었으니 이제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읊어도 되겠다.
마스크는 우리말로 탈, 탈박, 탈바가지라 하고, 한자로는 면(面), 면구(面具), 가면(假面) 등으로 불린다. 서양에서는 Maskaro(숯 검뎅이로 검게 칠하기)에서 기원해 라틴어로는 Masca라 해 마술사, 마귀라는 의미이다. 인류가 마스크를 사용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원시 제정일치 사회에서 주술사의 권위는 거의 무소불위에 가까웠다. 이들은 인간을 대신해 하늘과 소통하는 존재로서 주술 행위 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신이나 영의 힘을 전달받고자 했으니 이 때의 마스크는 힘의 상징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 부산 동삼동 유적지에서 발굴된 조개껍데기 탈이 최초로 알려져 있거니와 역시 주술적 용도로 추측된다. 신라시대 처용무를 비롯해 안동 하회탈춤이나 봉산탈춤 등 탈놀이로 전승됐기에 탈춤에서 예능적인 부분이 부각됐지만 모두 기복과 벽사의 민간신앙에 바탕하고 있다. 후대에 오면서 대부분 해학과 양반사회에 대한 풍자로 사회의 카타르시스 역을 하는데 우리의 탈은 웃고 분노하는 모습이 기본이란다. 이규태 씨는 이런 이유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보다 힘센 자에게 먼저 웃음으로 대해 본 뒤에 여의치 않으면 화를 내어 쫒아내는 심성과 연관이 있다고 했다. 이미 사스와 메르스를 겪었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에 대한 대비로 마스크가 일상용품으로 전환된 지 오래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제 마스크는 전 세계인의 필수용품이 됐다. 그런데 마스크가 복면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복면인 중에는 Zoro같은 의적보다 KKK단처럼 테러 살인에 방화를 하거나, 은행 강도가 복면으로 일을 저질렀기에 서양에서의 마스크는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우리야 여성 관광객들이 밤중에도 홀로 골목길을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치안이 안정돼 있고, 자동차 뺑소니 검거 율이 90%를 상회하는 경찰력이라 복면 정도야 무용지물일 뿐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과 미국에서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회피하고 생필품 사재기와 심지어 총기류까지 구입하는 사례를 보면 그들의 국민의식과 품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스크를 쓰고도 안정된 사회요, 세계가 우리를 배우니 오히려 우리나라가 명실공한 선진국이다. 이제껏 선진국이라 자부했던 나라들이 코로나로 갈팡질팡하다가 우리나라에 지원 요청을 하고 있고 드라이브 스루와 워킹 스루의 효과에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를 흉보던 사람들도 머쓱해 할 일이다. 우리는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 대량 송출로 줄서기가 잠시 일어났지만 긴요하지 않은 시민들이 스스로 구입을 자제하며 삼성의 도움으로 금세 안정됐으니 민관 협업의 보람이다. 가능한 집 생활로 마스크 착용 기회를 줄이는 터라 필자도 마스크 구입 대열에 서지 않았으나 생필품 사재기 없는 우리의 공공의식을 외국도 눈 여겨 봐야 한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하면 사람들이 서로 거리를 두고 다니면서 피차 마스크를 쓰고 있어 익명성이 보장된 듯 나름 편한 면도 있다. 여성들이 화장을 하고 마스크를 쓸 수 없어 화장품 회사에서는 매출이 줄어 난리라 하지만 잘 묻지 않는 화장품을 개발되면 되겠고, 이제 일과 생활 등 사회 전반에서 '코로나 전과 코로나 후로 구별되는 확연한 차이에 현명한 대처'라는 숙제가 남았다. '집콕' 생활이 길어지며 가면을 쓴 얼굴로 나를 보이려 한 점은 없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집의 문을 현관(玄關)이라 명명한 것은 자택에서 덕의 현묘한 부분까지 도달하려는 노력이라, 군자는 홀로 있음을 삼간다 하였으니(愼其獨) 차제에 재택 기간을 자신의 수양기회로 삼는 것도 좋겠다. 바쁜 현대 사회 생활로 바깥사람들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느라 가족을 뒷전으로 뒀던 것을 반성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며 공기를 안심하고 마심만도 감사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요즘이다.
정기검진 결과에서 비타민 D가 부족하다고 한다. 비타민 D쯤이야 햇볕을 쬐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줄 알았고, 평소 야외 활동을 많이 한다고 여겼기에 햇볕을 오히려 과다하게 쬐고 있는 것은 아닌 가고 여겼는데 의외이다. 검사 결과를 의사가 전화로 직접 알려주는 시스템인데 친절하게도 앞으로 햇볕을 가능한 한 많이 쬐라 한다. 이 말을 들으며 불현 듯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자타 공인의 운동광인 그 친구는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섭생에 유의하여 고기를 절제하고 앞으로 운동을 더 많이 하라는 조언을 했단다. 그러자 그 친구가 '운동을 더 하라구요? 그럼 저 죽어요.'라 했대서 웃었는데 야외 운동으로 까맣게 그을려 사는 나한테 햇볕을 더 쐬란다. 도대체 비타민 D의 역할이 무언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혈중 칼슘과 인의 농도를 조절하며 장에서 칼슘의 흡수를 도와 뼈의 성장을 돕고 튼튼하게 하는 호르몬 역할을 하니 중요한 영양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 몸이 참 신기하다. 평소에 경험한 것들을 묵묵히 저축했다가 필요할 때꺼내 쓴다. 햇볕을 받아 비타민 D로 활용하고, 어렸을 때의 좋은 경험이 훗날 성인이 되어 어려운 상황에서 버팀돌로 작용한다. 과거에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훗날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토해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에게 기왕이면 좋은 것들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신기한 것이 또 있다. 마음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짐이라는 뜻인데 몸의 어원은 모음이라 하며 '모아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늘과 땅의 정기를 모으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합하여 몸이 이루어지는 성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몸은 자연에서 나오는 음식을 섭취하여 에너지를 모아 지탱한다. 우리가 통상 부끄럽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수(羞-부끄러울 수)에 음식이라는 뜻도 있다. 사람은 먹어야 한다. 먹고 살아야 내 몸을 살릴 수 있는데 내 몸을 위하여 다른 동물도 먹어야 하고 식물도 먹어야 한다. 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먹기는 한다만 먹을 때는 늘 부끄러운 마음 즉 미안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으면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되고, 함부로 탐식도 안하게 되며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남기는 일도 없다.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조이불망 익불석숙(子 釣而不網 ·不射宿-공자께서는 낚시질을 하시되 그물질은 하지 않으시고, 주살질을 하되 잠자는 새를 쏘지 않으셨다.)' 있다고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필요한 만큼만 취하여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먹방에서 아귀처럼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신성한 음식에 대한 모독이다. 김지하 시인은 밥이 하느님이라고도 했는데. 어느 심장병 환자가 장기 이식으로 심장을 기증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고 주소도 모르던 어느 여인의 집을 자기도 모르게 찾아가게 되었단다. 처음 본 여인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심지어 사랑을 느껴 이상히 여겼는데 알고 보니 자기에게 심장 기증한 사람이 사랑했던 여인이란다. 뇌와 더불어 심장도 기억을 한다는 방증이다. 사람을 보고 호감을 느끼는 것도 가슴이 먼저 하고, 과거 익숙했던 것을 떠 올리는 것도 몸이 기억함에서 비롯한다. 행복도 화사한 분위기나 미려한 말보다 맛깔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었을 때 내장이 느끼는 강도가 제일 세다고 한다. 햇볕이 좋다한 들 넘치면 피부가 타듯이 매사 과유불급(過猶不及)이요 절제는 기본이다. 정돈되고 꼭 필요하며 엄선된 내용으로 저축되면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없으리라. 몸에 좋다는 건강 음식을 찾듯 후대들이 행복한 경험을 얻도록 어른이 모범되고 지혜로운 삶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배려다. 우리는 후손들이 잘 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빚이 있다.
'각자도생-스스로 살길을 찾는다'은 중국에도 없는 한자이다. 본디 언어는 문화와 역사를 대변하므로 나라가 백성을 도저히 챙길 수 없던 상황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왔으리라.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환란과 기근으로 민초들의 삶이 참혹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난 선조에 대한 분노가 경복궁 장예원에서 일어난 불길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숨어 들어가 백성을 버려둔 인조와 1809년 대기근과 삼정의 문란으로 부패가 극에 달했던 순조 모두 백성을 미처 살피지 못했던 군주요 자기 몸 운신하기에도 벅찬 처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이 터득한 삶의 철칙이 각자도생이었다. 대한민국 국군사 최악의 흑역사가 현리전투이다. 1951년 5월 오마치를 두고 중공군과 미군 그리고 우리 육군 3군단 유재흥 장군이 지휘했던 강원도 현리 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군단장의 무능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군대가 와해되어 70km를 후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장군은 전략 지시도 없이 세스나 비행기를 타고 떠나니 도망했다는 소문만 남겼고, 장교들은 부하를 팽개치고 줄행랑이요 사기가 떨어진 병사는 병기를 버리고 도망하여 중공군의 포위에서 자신을 지켜야 했으니 이야말로 각자도생이다. 전투 후 미 8군단장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이 패장인 3군단장을 불러 당신의 군단과 예하부대는 어디에 있느냐 질문하자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기막힌 답변을 하니 패전의 책임을 물어 3군단을 해체하고 전시군사작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을 피해 도망하는 군인들의 모양은 참전용사이셨던 필자의 선친에게 들은 바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복궁에 놀러갔었는데 전쟁 때 저 담을 뛰어 넘으셨다고 하신다. 저 높은 담을 어떻게 넘었느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급하면 없던 힘도 생긴다 하며 지금은 내가 저 담을 어떻게 넘었을까 스스로 놀랍다 하셨다. 군화를 벗지 못하고 여러 날을 죽기 살기로 달려서 발이 부르트면 급한 김에 발바닥 물집을 라이터불로 지지며 도망했는데 아픈 줄도 몰랐다고도 하셨는데 이 또한 각자도생이다. 국왕은 천인합일의 경지에서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 그래서 왕은 하늘이요, 하늘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관료들은 그러한 왕을 보필하여 하늘의 순리를 백성에게 펼치는 동반자이다. 만약 기근이나 역병이 들면 국왕은 침전을 옮기고 반찬을 줄이며 자신의 부덕을 탓하였고 하늘의 노함이 빨리 사라지기를 빌었다.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고 가는 코로나 초기 대응에서 우리나라는 정치가가 의협의 전문적 권고를 무시하고 안이하게 대처한 잘못이 있다. 게다가 국민의 안위가 위태로운 판에 청와대에서 벌인 짜빠구리 오찬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봉감독의 아카데미 수상도 물론 훌륭하지만 약속을 미루고 비상 국무회의라도 주재했어야 옳다. 대구 경북에서는 인명이 촌각을 다투고 있는 그 시각에 영부인은 뒤로 자빠지며 웃고 있으니 이를 보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대통령이 야당 복은 있어도 참모 복은 없다더니 이런 사진을 언론에 올린 청와대 홍보팀도 참 한심하다. 게다가 집값은커녕 마스크 값도 못 잡는 정부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듣고 있는데 이제 간신히 변곡점을 돌자 나오는 집권 여당의 자화자찬 또한 경망스럽다. 우리는 정부가 변종 바이러스인 코로나의 조기 종식과 더불어 이후에 역병으로 말미암아 사회전반에 드리운 암울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경제와 사회를 어떻게 반전시킬지가 더 궁금하다. 위정자라면 모름지기 예후를 살펴 미래를 대비할 안목을 키워야지 남의 탓이나 하고 그저 목전의 표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국민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모는 거다.
모자는 소중한 머리를 보호하는 목적과 함께 하늘을 이는 예절의 표시도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고구려인이 책 절풍 등 모자를 썼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검수적각(黔首赤脚)이라 하여 백정들이나 민머리였을 뿐 모두 모자를 썼으니 이제 그 신분의 방증도 된다. 샤를르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의하면 빠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인 집을 방문할 경우 어디가 주인의 아랫목인지를 빨리 살펴 주인의 심경을 거슬리지 않아야 하는데 방법은 갓 걸린 벽을 찾는 것이란다. 조선 사람들은 아랫목 쪽 벽에 갓을 모셔두기 때문이다. 공식 행사와 빈객 접대 시 의관 정제로 모자는 예와 의를 갖추는 으뜸 복식이었다. 여러 해 전 겨울에 프랑크푸르트의 지하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앞에 있는 체구 건실한 사람이 검정색 롱코트 어깨와 챙 넓은 중절모에 방금 내린 눈을 이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 어느 해인가 졸업식 뒤에 학부모가 아들의 진학 답례라며 선물을 내 민다. 이러실 필요 없다고 해도 교감선생님이 공부 안하던 우리 애한테 희망을 주신 보답이라 하여 하는 수 없이 받아보니 바로 내가 원하던 중절모이다.(해트보다 챙이 약간 좁은 페도라였다) 함박눈 펑펑 내리는 밤에 덕다운 벤치코트에 그 페도라를 처음 쓰고 걷는데 어깨에는 눈이 소복하고 이따금 고개를 숙일 때마다 머리에서 눈이 우수수 떨어진다. 혼자 걸어도 흐뭇한 밤이었다. 골프 연습장에 드라이버가 120M 정도 나가는 연로한 분이 있는데 접수대의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은퇴하신 경레오 신부님이란다. 이름은 들은 터라 다음 날 인사를 드렸더니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겨우 아는 체를 해 주신다. 친해진 뒤야 감곡 분으로 그 곳 성당 초대 신부이신 임가밀로 신부님을 모시고 어릴 적부터 복사를 하다가 서울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나오셨음을 알게 되었다. 가밀로 신부님이 프랑스 루르드 부근 출생이라 엄마 손을 잡고 다녔던 기억을 바탕으로 감곡 성당에 루르드 성모 동굴을 지었으므로 감곡은 성모 동굴의 원조라는 내력까지 소상히 알려 주신다. 알고 보니 청주교구의 살아 있는 역사로 들을 이야기가 많다. 80대 중반이시라 청력이 안 좋아 그분 말씀은 로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듣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어느 한겨울 날에 여름 모자를 쓰고 오셨기에 겨울 모자 하나 드릴까 여쭈었더니 '나 모자 많아. 안 쓰는 중절모도 3개나 되는 걸?' 하시며 필요하면 하나 주시겠단다. 지나가는 말씀임에도 그 중절모가 궁금하여 신부님 댁을 방문했더니 이게 웬 일? 방안에 펼쳐 놓은 모자가 중절모 뿐 아니라 베레모와 헌팅캡 그리고 동계용 골프 모자까지 일곱 여덟 개는 된다. 이렇게 많이 필요 없다 해도 이제 버리는 중이니 사양 말라신다. 모자를 써 본 즉 맞춤처럼 잘 맞는다. 모자가 잘 어울린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너무 신기하여 시렁에 모자가 이미 한 가득 있어도 다른 사람 주기는 아깝다. 작년에 골프와 운전을 그만두신다 하여 식사를 대접하려는데 주변 사람들도 합세하여 대여섯 번 식사 자리를 마련한 때문인가. 감곡 출신 가르멜 수도원 박신부님을 안다고 말씀드린 때문일까. 아무튼 주신 모자만 보아도 마음이 풍요롭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신부님께서 수십 년간 아끼시던 모자를 몽땅 주셨으니 이제 나는 처신을 더 잘 해야 되는 거다. 내야 모자에 닿았던 신부님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팔십 평생 삶의 경륜까지 전수받으면 좋지만, 모자 주신 신부님이 보시기에 흐뭇하려면 말과 행동에 더 신중해야 할 것이라. 그동안 애착을 갖고 소장하던 나의 것들도 신부님처럼 주변에 나누어야 보답일 텐데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받을 땐 좋았는데 중절모에 대한 욕심으로 의발전수(衣鉢傳授) 제자 비슷한 모자전수 제자가 되게 생겼다. 이거 참 야단났다!
동생네가 전화를 하여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옛날 선비들이 먹었다나? 명륜동 뭐라 하는 고기 집인데 양념 돼지 갈비가 무한 리필 되는 데다 내가 좋아하는 가래떡이랑 야채도 실컷 가져가 먹을 수 있는 푸짐한 곳이다. 식당은 입추의 여지없는 만석이요,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하여 차후에 이런 고기 집에 올 경우에는 냄새가 배지 않게 옷 단도리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양껏 먹고 나오며 기만원 하겠다 여긴 식비가 인당 1만3천원밖에 안 된단다. 그럼에도 나름 1인당 3만 원 정도의 가격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심리적 가격이다. 심리적 가격이란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심리적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책정하는 가격을 말한다. 주로 많이 이용하는 방법은 1만원보다는 9천900원에서 소비자는 할인받는 느낌이 들도록 하든지, 또는 소비자가 가격 변동에 의하여 수요 증감이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범위를 찾아서 결정하는 가격은 모두 심리적 가격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얼핏 예상 가격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나의 개인적 판단에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보면 되겠다. 회비 4만원 내고 참석하는 등산모임에서 평소 갈 엄두를 못 내는 서너 시간 넘을 원거리에 가서 소풍도 하고 게다가 맛있는 회를 저녁으로 실컷 먹었다면 이것도 십만 원을 호가한다고 느끼는 심리적 가격이리라. 사람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없던 여유도 생기는데 가성비 높게 양질의 식사를 저렴히 했다면 부응하는 심리적 포만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 나 자신에 대한 심리적 가격은 어떨까. 조선시대 이래 천지지간 만물의 무리 중에 오직 인간이 가장 귀하다고 가르치고 있었음이 동몽선습에 나와 있다(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最貴).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므로 나와 더불어 상대도 마땅히 예를 다하여 존중해야 한다고 어렸을 적부터 배웠다. 서양에서는 예수님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비슷한 취지의 말씀이 성경에 있다. 동방에서는 대학자 퇴계선생이 수신십훈(修身十訓)-몸을 다스리는 열 가지 교훈-의 첫 조항인 입지(立)에서 '먼저 뜻을 높이 세워야 한다. 성현을 목표로 하고, 털끝만큼도 자신이 못 났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모두 자신에 대한 존중이 있은 연후에 남을 존중하라는 순서를 보이고 있다. 이를 보면 자신을 중히 여긴 다음에야 비로소 남을 최상으로 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보면 인간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자존감은 자기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감정임과 동시에 타인에게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정도로 이해되며 자존심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모두 자신을 좋게 평가하려는 마음이다. 그런데 자존심은 타인을 통해 바라본 자기이므로 비교의 성향이고, 자존감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이므로 긍정적인 경향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을 경우 곤두박질치게 되는 자존심과는 달리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 다른 사람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는다. 배우러 왔다가 마음에 차지 않아 떠나는 제자가 있어도 자기를 몰라본다고 화를 내지 않는 대인이 된다. 심리적 가격으로 자신을 높게 매기려면 자존감이 높아야 할 것이다. 자신을 높게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긴다. 요즘 각박한 정치풍토 아래에서 내로남불이 판치고 SNS가 발달하면서 정신 이상적 징후가 자주 보이는 것도 자존감이 부족한데서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가 아닌가 하여 걱정된다.
보생와사(步生臥死-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걸산누죽(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라는 말이 주변에 회자된다. 경제 문화 수준에 따라 사람들의 운동 스타일이 변하는데 첫 단계는 부대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조깅이나 테니스를 하고, 그 다음에는 골프와 승마를 즐긴다. 최상위의 여가활동은 요트와 비행기로 마무리된다는데 돈깨나 있는 세계의 부호들은 우주여행에 막대한 돈을 쓴다고 한다. 요즘 다시 활발한 걷기를 경제 수준의 어느 단계로 평가할지 모르나 건강에 대한 관심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인간들의 공통사이다. 헬스로 먼저 근육 불릴 곳을 하체로 잡아 운동을 하였다. 테니스나 골프 등 손으로 하는 운동도 사실 하체가 탄탄해야 함을 체득한 터였고 하체가 튼튼한 사람은 잔병치레를 안 한다고 하신 동네 어른들의 말 때문이었다. 레그프레스와 스쿼트 등 여러 운동으로 종아리를 건실하게 한 작년 여름이었다. 하절기에는 골프 복장으로 반바지가 허용되기에 비타민 D가 부족하다는 검진 결과도 있어서 일부러 반바지를 입었는데 친구가 오른쪽 종아리의 작은 사마귀를 지적한다. 그냥 무시 하렸더니 아 이것이 처음에는 좁쌀만 하다가 쌀알에서 팥알만큼 커지더니 이제는 콩알 크기만큼 커진다. 몸속에서 자라면 암이요, 겉에서 자라면 사마귀라고 하던데 자꾸 커지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의사 친구에게 묻자 사마귀인지 지방 덩어리인지는 절개를 해 봐야 된다며 만약 부위가 아프면 좋지 않은 예후라 한다. 부러 문질러도 보는데 크기의 몇 제곱이상으로 걱정은 더 커진다. 작렬하는 태양에도 불구하고 테니스를 즐기며 다리를 새까맣게 태웠던 사람이 결국 피부암에 걸렸단 말도 들은 터라 혹 피부암이면 어쩌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든다. 원래 몸이라는 것이 있는 줄 알게 되고 신경이 쓰이면 결코 좋은 것이 아닌지라 이제는 내 몸에서 제일 중요한 곳이 오른 쪽 종아리가 되어버렸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거늘 이제 종아리는 걸을 때는 물론이고 잠자리에 누워도 먼저 의식되는 가장 큰 곳이 되었다. 달포 후 부지불식간에 종아리가 가려워 긁다보니 사마귀 부근을 긁고 있다. 자세히 보니 가장자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중이다. 가운데는 검게 그을리고 조금 피부가 갈라졌고 떨어져 나간 자리는 하얗게 변한 부조화스러운 모습에 어떤 상황인가 궁금해진다. 이렇게라도 조금씩 떨어져 종당에 다 없어지면 무사한 것이고, 안에서 새 사마귀가 줄기차게 나오면 피부과 병원을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샤워 중에 보니 터만 하얗게 남아 있고 콩알만 하던 놈이 온데 간데없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던 것이 별것으로 부담을 주더니 있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의사가 환자에게 해 주는 것은 원인에 대한 치료가 아니라 증상을 없애주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뿐이요, 회복은 오로지 몸의 몫이라 하더니 별도로 대해 준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내 몸이 사마귀를 몰아내 주었구나. 고마울 손 내 몸이여! 채근담에 이르기를 "고기는 물속을 헤엄치면서도 물을 잊어버리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지만 바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漁 得水逝 而相忘乎水 鳥 乘風飛 而不知有風"고 한 말이 고마움을 모르는 우리 인간의 경우이리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난리인데 그깟 사마귀에 비하겠느냐만 서도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무서운 바이러스가 자꾸 등장하니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이웃 나라는 수만 명 확진에서 기백명이나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의 확진자는 모두 완치되어 병원에서 걸어 나가기를 바란다. 이 기회에 세계로 입증된 우리 의료진 실력으로 의료 관광이 크게 뜨면 좋겠다. 위기가 호기가 되기를.
퇴계선생의 소망은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치열히 공부하시며 3,000여수의 시를 남겼는데 한시를 지식인들은 즐기겠으나 일반 대중들이 노래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당시 유행하던 한림별곡과 육가 등의 노래가 문제 있음을 살폈던 선생은 아래와 같이 언문으로 도산십이곡 지은 이유를 밝히셨다. '이 가사를 지은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 노래가 많으나 온유돈후한 노래가 적음을 애석하게 여겨 노래로 부르려면 시속말로 적어야 하니, 아이들로 하여금 조석으로 익혀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고 뛰게 한다면 비루한 마음을 씻어 버리고, 감발하여 마음이 화락해져서 노래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가사가 노래 곡조에 들어가면 음절에 화합할지를 스스로 믿지 못하매 당분간 한 부를 써서 상자 안에 넣어두고 때때로 꺼내어 스스로 반성해 보고 또 훗날에 열람해 보는 자의 취사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도산노인 쓰다.'(도산십이곡발 중)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들에게 부여된 금년 1차 연찬회 과제는 도산십이곡 숙지 완창이다. 지도위원들은 대부분 교장이요, 공무원 출신이므로 각종 연수와 자격시험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분들이다. 이제는 암기 실력이 예전 같지 않음에도 이렇게 많은 12곡을 어떻게 외우느냐, 이런 것을 왜 하느냐는 불평도 없이 묵묵히 암기에 돌입하였다. 유튜브를 들어 곡을 익히고, 빼곡히 가사 적은 종이를 주머니 속에나 휴대폰 카메라에 담아 외우고, 방안 곳곳이며 침대 머리맡까지 악보를 두어 눈 갈 때마다 살피는 등 아이디어 백출이다. 선비교육으로 모이면 가사 다 외웠는가· 확인이 인사이고 강사대기실에서는 당연히 도산십이곡 노래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온다. 8개 지부가 각기 모여 사전 노래 연습도 한 뒤에 2020년 1월 2일에 드디어 상금까지 걸린 제창대회가 열렸다. 화음까지는 여력이 없어 합창이라기보다 떼창이라도 역시 과거 이력에 걸맞게 다들 잘 외워 오셨다. 유치원 어린이 같이 긴장되고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 위에 오른 노인들의 모습이 재미있으며, 간혹 악보를 손에 든 팀도 있고 태극문양 부채 뒷면에 악보를 붙여 사알짝 보는 팀도 있지만 이 정도는 애교로 치자. 매번 지도위원 연찬회에 참석하시는 퇴계 16세 종손 이근필 옹이 앞으로 퇴계 불천위 제사에 도산십이곡을 헌창하며, 금년은 제사에 참례하는 지도위원들이 올리기를 바라신다. 불천위 제사는 만고의 사표가 되는 훌륭한 어른은 4대 봉사 후에도 계속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갓이나 유건과 도포로 의관을 갖춘 지도위원 100여명이 종택의 추월한수정에서 도산십이곡을 헌창하였다. 퇴계선생이 듣고 계실 터, 한겨울 매섭게 시린 밤바람이 귀와 볼을 얼리는데도 우리의 입김은 서리서리 올라갔고 노래 소리는 깊고도 힘차게 도산 고을에 울려 퍼졌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께서도 마루에서 당하로 내려와 같이 부르시는데 마침 황포를 입어 행렬 맨 앞줄에 선 덕에 원장님 뺨에 흐르는 눈물이 보인다. 작곡자인 퇴계 16세 외손 김종성 교수는 오전 강의 중 제창 고유로 수강 지도위원들이 노래하는 중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도산십이곡 제창대회를 제안한 이사장님은 겨울 밤바람에 차가울 눈물도 닦지 못하시고. 마당에서 노래 드리는 우리의 발은 시려 와도 뜨거운 감동으로 코가 찡하고. 1565년 3월 16일(음)에 후인이 나의 가사에 곡을 붙인 뒤 이 노래가 세상 사람들에게 익혀 불러지면 좋겠다는 선생의 바람이 2020년 1월 2일에 이루어졌구나. 그것도 도산십이곡이 고비합사(考妣合祀)로 처음 지내는 선생의 제사에서 영전에 헌창되었다. 세상을 착하게 하려는 노력으로 이 땅에 크게 울려 퍼지는 도산십이곡 고고지성(呱呱之聲)이 아닌가.
의사 친구에게서 자기의 병을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여겨 의사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하고 고집만 피우는 환자를 만났던 경험담을 들었다. 이런 사람은 주변의 말이나 인터넷 웹핑으로 얻은 지식만 믿고 전문가인 의사의 말도 안 듣고 심지어 처방도 자기가 내려 통고하기도 한단다. 정도가 심한 환자는 차트 한 구석에 조그맣게 mcn이라 적어서 조심하라 이르는데 그 뜻은 '미친년'이다. mcn들은 간호사에게 무례하기 일쑤이며 의사의 말도 자기 편한 대로만 골라 들으니 병도 쉽게 낳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도 열의는 고사하고 관심을 가지기도 어려워 제멋대로 살도록 두어 버린다하니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무시한 섬뜩한 결과라 하겠다. 한의원을 하는 제자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이미 여기저기서 온갖 풍월을 다 익힌 환자는 처음 내방 문진에서 벌써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데 마음을 옹골지게 먹고 온 이런 부류의 환자에게는 이상하게 침도 잘 안 들어가는 느낌이란다. 어떤 때는 침을 놓은 뒤에 몸의 기운이 빠지는 듯 피로감까지 느낄 때도 있어 이 같은 환자를 여러 명 진료라도 하는 날은 퇴근 후에 그냥 쉬어야 하니, 당연히 치료도 쉽게 되지 않을뿐더러 진료 시간만 축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단다. 양방과 마찬가지로 한방에서도 의사의 전문 영역을 믿지 않는 환자는 치료 효과가 없거나 더디다는 공통점이 있다. 충북 중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타시도 특성화고로 진학을 했다가 원하는 성적도 못 내고, 학교생활 부적응이라 교육청에 와서 다시 충북으로 재전입하려는 학생이 있었다. 마침 그 학생이 1, 2학년 때 학생회 간부였었기에 해당 학교의 교감이었던 나도 기억을 하던 터였다. 관심을 가지고 전입 후 내신에서 주의할 점을 알려 주는데 마침 대입 담당 장학사가 옆에서 거들어주었다. 장학사가 학년별 생기부의 성적과 내신을 잘 받기 위한 전략을 더욱 상세히 안내를 해 주고 났는데 그 어머니의 말이 뜻밖이었다. 잘 들었다거나 고맙다고 하면 그래도 평범할텐데 '장학사님이 뭘 아세요?' 라고 오히려 반박을 하니 이런 놀랄 일이 있는가. 그 장학사는 대입 전문가에다 충북 고3부장들을 모셔 진로 안내를 해 주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입시 전문가인데도 주변 학부모와 학원 몇 군데에서 귀동냥으로 얻은 소위 카더라식 선입견이 입시 전문가의 말도 귓전으로 흘리게 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위상을 학부모의 잡학이 덮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석사 때 모 대학 총장님은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10여 년 동안 하루에 15분만 같은 공부에 매달리면 그 방면에서 충분히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초지일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씀했었다. 비슷한 말로 '1만 시간의 법칙'도 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가량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 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이 소요되는 계산으로 미 콜로라도 대학교의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에 의해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요즘 창의는 엉덩이에서 나온다는 교육 이론도 있어 새겨볼 만하다. 이 세상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전문 지식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지식과는 판이하며 전문가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라 공부한 결과요, 엉덩이에서 땀띠 날 정도로 책상에 앉아 얻어진 보람이다. 방대한 지식 앞에 왜소함을 느껴 본 사람들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는 잡다한 지식의 소유자와 어깨 너머로 배운 사람이 전문가를 대신하거나 무시한다고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체계적인 공부도 소홀히 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의 영역을 존중하지도 않는다는데 mcn도 그런 영향이겠다.
몇 년 전 스페인의 화랑에서 그림 속 인물의 눈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이동을 할 때마다 그림 속의 탁자가 내 쪽으로 찌그러져서 신기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그림에 원근법을 적용한 때문이란다. 서양에서는 13세기 이후 원근법이 시각론에 기초하여 1417년 건축가 브루넬레스코가 투시 원근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완성하였고 저 유명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그 기법이 드러난다. 동양화에서는 동진 고개지의 「여사잠도」에서 원근 개념이 나타났으며, 유송의 화가 종병이 산수화론에서 원근법을 설명했다고 한다. 시기로는 동양의 원근법이 이른 편이나 대부분 동양화에서는 원근법을 수묵담채의 농담으로 나타내는데 머물렀다. 이는 동서양의 자연을 대하는 인식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은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하여 자연을 객체로 인식하고 정복 지향적으로 대하였으나 동양인은 자연을 전일적 조화론 적으로 인식하는 이른 바 인간과 자연을 일체시하여 자연 자체를 주인으로 여겼다. 때문에 서양에서 원근법이 더 발달하였다고 한다. 서양은 자연을 극복대상으로 여겼으므로 지구라트나 바벨탑 같은 건축물이 나오고, 동양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하므로 가급적 자연친화적인 건축을 으뜸으로 여긴다. 자연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본다고 여겨서 우리의 옛 선인들은 풍광 좋은 곳에 대(臺)와 루(樓)나 정자를 지어 자연 속에 동화되고자 하였다. 가히 자연을 바라보는 단계에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수준으로의 상승이다. 이는 물아일체의 사고로도 연관되어 진다. 사전적 의미로 물아일체란 자연물과 자아가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대상에 완전히 몰입된 경지를 나타낸다. 이로써 자연을 바라본다면 자연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더욱 아름다워지고 이에 따라 인간의 삶도 더욱 건강해 진다는 것이다. 자연의 개발을 전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생태와 미적 균형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가급적 거스르지 않으려는 논리이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자연에 동화된 인간이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자연의 이치를 순리로 여겼다. 인간관계로서 나와 너에 대한 생각도 자연관에 따라 지평이 넓어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유독 '우리'라는 생각이 강하다. 어떤 철학자는 이러한 까닭을 한국인에게는 하늘마음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미 단군의 홍익인간에서 연유가 있으므로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오는 따스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넓디넓은 이 하늘마음이 한류로 작용하여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 나라의 국력은 문화의 힘이 최상의 경지라 하는데 대장금, 싸이, 방탄소년단 등으로 한국 문화가 세계만방에 드높여졌다. 그 바탕에는 우리의 높은 정신문화가 깔려 있음을 새겨야 한다. 동학란이 일어났을 때 세도가들의 집이 동학교도들에게 공격을 당했어도 평소 지역주민들에게 인심을 베풀며, 이들의 궁기를 보살펴 나눔을 베풀었던 양반들은 오히려 동학교도들이 겁난을 당하지 않게 보호를 해 주었다. 일제의 잔인한 식민통치기간에도 국내에 들어온 일본인 중에 한국 사람들에게 잘 대해준 사람들은 일본이 패망하게 되자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보호로 안전하게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것도 물아일체의 사고로 배운 것이 아닐까. 정권만 바뀌면 권력 수반에 들었던 사람들이 줄지어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는 우리나라의 현 정치문화 아래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 연장을 해야만 신병이 안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선심성 복지정책이 난무하게 되어 예전 로마를 몰락시켰던 '빵과 서커스의 정치'가 다시금 재현되는 것이다. 물아일체의 사고로 주변을 대하면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로 항상 자신을 성찰하면 안전하지 않을까.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라는 명저를 낸 영국의 석학 A. J. Toynbee(1889~1975)는 말년에 한국의 효 사상을 알고는 감격에 겨워 '한국이 인류사회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효자상(孝子像)일 것'이라 하였다. 삼대가 오순도순 모여 형제간 우애롭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모습은 인류를 위하여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 할 정도였다. 얼마 전 퇴임 교장 모임에서 만추 나들이가 있었다. 섬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한 선배가 작금의 한심한 정치행태를 비판하자 한참 후배가 목소리까지 변해가며 대든다. 옆에 있던 사람이 나지막이 '저 사람은 대깨문이구만'하기에 찾아보니 대가리가 깨져도 문00라는 뜻이란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정치가는 교주나 스타도 아니요, 단지 국민이 생업에 전념하고자 대의제로 내세운 사람일 뿐 모름지기 정치의 근본은 국민에 있다.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잘 하면 지지해 주고 잘못하면 선거를 통해 잘 할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옛날 군주제에서조차 국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반정(反正)을 하였는데 '나라를 팔아도 문00'라는 말도 있다니 경악할 일이다. 이는 나라를 발전시켜야 하는 기본 책무가 있음을 망각하고 단지 정치가에게 감정적인 포커스를 맞춘 소치도 있겠다. 정치에서 포퓰리즘이나 파시즘은 절대 조심해야 함을 세계대전의 역사가 말해준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일제라는 군국주의자들에게 식민통치를 당해 본 아픈 상처가 있으니, 독일 사람들이 나치즘보다도 나치즘을 묵인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텐데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국론이 크게 나뉜 적은 당쟁도 있었고, 전쟁 이후 나라 처리를 놓고 찬탁이냐 반탁이냐 등으로 의견이 갈린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진영 논리는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라는 원색적 표현 때문이 아니라 세대 간 갈등을 야기하는 후폭풍 때문에 이보다 더 염려스럽다. 컴퓨터가 나오면서 기계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윗사람을 대하는 젊은이들의 존경심이 약해졌다. 휴대폰으로 SNS가 확산될수록 노인의 지혜가 점점 더 쓸모없어지는 사회가 되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인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인 어르신에 대한 공경문화가 정치적 기회의 필요로 조장된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외국에서는 정치문제 정도야 카페에서 차 한 잔 놓고 벌이는 대화거리이다. 그런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공적인 자리는 고사하고 가족 모임에서도 정치적인 이슈는 민감한 문제로 여겨 말도 삼가는 추세이다. 선대의 좋은 점을 후대가 이어받는데서 발전이 이루어지는데 후배가 선배를 능욕하는 마당에 무얼 더 바라겠는가. 정치가야 표 하나가 소중하니 그럴 수 있다손 상황을 냉정히 살펴야 할 책임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할 국민이 맹목적 추종을 하고 있으니 '조빠'니 '개싸움' 운운도 나오는 것이다. 이러다가 우리나라에서 집단 파시즘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으며, 그 피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후손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되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증오 광기 복수는 모든 면에서 버려야 하며, 특히 정치에서 증오와 광기 복수는 개인은 물론 국가를 망치게 만든다. 지역 간 단절은 도로와 교량으로 푼다지만 세대 간 갈등은 무엇으로 풀 것인가. 세대가 단절되면 존경받는 사람도 사라지고 선대의 자랑스러운 역사조차 계승이 요원해질 것이다. 외국에서도 부러워하는 '효경사상'을 이러다 책에서나 찾게 될까봐 걱정된다.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고, 역사를 모르면 우리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역시 토인비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