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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1.08 14:34:08
  • 최종수정2025.01.08 14:34:07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금년은 을사(乙巳)년 뱀띠 해이다. 을사년이란 60간지 중 42번째로서 청색의 '을(乙)'과 '사(巳)'가 합쳐진 푸른 뱀의 해라고도 부른다. 60년마다 반복되는 을사년은 우리 한민족에게는 유난히 다사다난한 해였다. 645년 을사년에는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백제의 대야성을 점령한 '을사의 변(變)'이 있었고, 945년 을사년에는 '왕규의 난', 1545년에는 외척 세력 간의 권력다툼으로 사림파가 대거 희생된 '을사사화(乙巳士禍)', 1785년 조선 천주교 박해의 시초가 된 '을사추조적발(乙巳秋曹摘發) 사건',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1965년 '한일협정' 등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120년 전 을사늑약(乙巳勒約)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이 불평등 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함으로써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고 식민지의 설움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의 어원이 '을사년스럽다'에서 생겨났다고 하듯이 을사년은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난 불행을 가져온 해였던 것이다.

그러면 '뱀'과 관련된 지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2년 전인 2013년에 계사년(癸巳年)을 맞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뱀과 관련된 지명을 분석했다. 당시 우리나라 150만여 개의 지명 중 208개가 뱀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주로 남부 지방에 많이 분포하는 것은 아마도 농경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뱀골'처럼 '뱀, 배암, 비암'등의 지명 요소가 들어있는 지명과 '사동(蛇洞), 장사도(長蛇島)'처럼 한자로 '사(巳)'로 표기된 지명들만을 뱀 관련 지명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명의 유래 등을 세부적으로 조사하면 뱀 관련 지명은 엄청나게 많다.

옛날에는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삶의 수단이었기에 지명에도 농사를 짓는 땅을 가리키는 말이 지명요소로 많이 사용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논 농사를 짓는 한 덩어리의 땅을 의미하는 '배미'라는 말이 지명 구성요소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배미'라는 말의 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쓰이는 지명도 많이 남아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불리면서 음이 변이되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지명으로 바뀌는 예를 많이 볼 수가 있다. 즉 '배미'의 변이음인 '뱀'은 당연히 '뱀(巳)'이 연상되므로 뱀과 연관 지은 유래가 생겨나고 뱀의 의미를 가진 한자로 표기하면서 다양한 유래와 소리를 가진 지명들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괴산군 문광면과 청천면에 걸쳐 있는 '배미산(倍媚山)'과 제천시 수산면과 덕산면에 걸쳐 있는 '배미산'은 등성이가 뱀 모양이어서 붙은 지명이라고 하지만 한자로는 야미산(夜味山)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그 뿌리는 '뱀'이 아니라 '배미'에서 온 말임을 알 수가 있다.

'배미'가 지명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그 형태로 차별화해야 하기에 '큰배미, 작은배미, 높은배미, 낮은배미' 라는 지명이 지금도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옥천군 청성면 소서리의 '작은뱀티(소사동)', 옥천군 청산면 대덕리의 '큰뱀티(대사동)' 등의 예를 보면 '뱀'이 '배미(논 농사를 짓는 한 덩어리의 땅)'임을 알 수가 있으며 이들 지명이 '배미 인근에 있는 고개'의 의미에서 생겨난 지명으로 추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뱀과 배미'가 혼용되고 있는 '배미골, 배미산, 배미고개, 배미재'와 같은 지명들은 충청북도에만 해도 그 예를 일일이 들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뱀'과 '배미'가 '율리(栗里), 율량동(栗陽洞), 밤고개', '높은뱅이, 천뱅이'처럼 '밤, 뱅이'로 변이되어 쓰이는 지명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와같이 뱀과 연관 지은 지명이 많다는 것은 우리 생활 주변에 뱀이 아주 흔했으며 뱀이 가지고 있는 좋은 이미지를 이어받고자 한 조상들의 지혜가 스며있다고 하겠다.

아무쪼록 엄청난 사건들과 함께 시작되는 금년 을사년은 허물을 벗고 크게 팽창하는 뱀의 재탄생과 치유력, 끈질긴 생명력의 기운을 받아 국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해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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