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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10.27 15:50:11
  • 최종수정2021.10.27 15:50:11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은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정리(有亭里), 구곡리(九谷里), 용성리(龍城里), 구하리(九下里) 일부를 병합해 용성(龍城)과 유정(有亭)의 이름을 따서 용정(龍亭)이라 하여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됐다가 1963년에 청주시에 편입됐다.

'용성골'이라 불리던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다가 넘는 고개를 '중고개'라 하고 이 주변에 생겨난 마을도 '중고개'라 불렀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옛 지형이 모두 사라지고 용암동, 금천동 지역의 '중고개로'라는 도로명에, 그리고 용성초등학교라는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정골을 가려면 중고개를 넘어 험난한 구중고개를 또 넘어야 했는데 중고개와 구중고개가 같은 음의 중복으로 혼란을 주므로 구중고개를 이정골고개라고도 불렀다. 중고개와 구중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 중엽에 청주에 낙향해서 살던 이참판의 딸이 집안에서 부리는 머슴을 사모하다가 상사병이 되고 말았다. 머슴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간곡하게 만류했으나 막무가내였으므로 그 길로 혼자 도망을 쳐 용바위골 낙가산(洛迦山) 기슭에 있는 보살사(菩薩寺)로 들어가 불가(佛家)에 귀의했다. 그녀는 머슴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절에 있는 머슴을 발견하고는 둘이 절을 빠져나갈 것을 간청했다. 머슴은 그녀의 흐느낌과 호소에 마음이 움직여 두 남녀가 몰래 보살사를 빠져 나와 청주성으로 향하던 중 항상 넘나들었던 '중고개'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두 남녀는 서로가 같은 신분이 아닌 이상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루어질 수 없는 처지를 슬퍼하며 함께 목을 매고 죽었다. 이 일을 알게 된 주지 스님은 참회의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서 스님들에게 이 고개의 통행을 금했다.

그리하여 옛 중들이 지나던 고개라고 해서 오늘날 그 고개를 '구중고개(舊僧峙)'라 하고, 새로 넘나드는 길목을 '중고개(僧峙)'라 했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보면 '구중고개'의 '구'를 '구(舊)'로 보아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나 어떤 이는 '구중고개'의 '구중"은 한자 '九重'으로 보기도 한다. '구중(九重) 궁궐'이라는 표현에서도 보듯이 '구중(九重)'은 어떤 대상이 겹겹이 이어진 모습을 나타낼 때 쓰이므로 고개가 몇 겹으로 굽이굽이 이어져 있어 '구중고개'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자의 의미로 보면 그럴듯하지만 자연 지명은 한자로 표기하기 이전의 순수한 우리말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전해져 온 것을 생각한다면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우선 중고개의 원래의 의미를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고개란 산을 넘는 길을 의미하므로 고개와 산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산을 넘는 고개'라는 의미로 '잣고개'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높고 낮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마을 주변에 높고 낮은 고개가 있게 마련이므로 이 고개를 가리키는 말인 '잣고개'가 일반명사로 흔히 사용됐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잣고개'가 그대로 전해지거나 '잣'을 '백(栢)'으로 표기한 지명도 있지만, 많은 지명에서 '장고개'로 변이돼 '시장으로 가는 고개'의 의미로 지명 유래가 만들어졌다.

중고개라는 지명을 찾아보면 보은군 산외면 이식리의 '중고개'를 비롯해 음성군 감곡면 월정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전북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 전남 광양시 광양읍 덕례리, 대전 유성구 둔곡동, 충남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전북 정읍시 내장동, 경남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경남 고성군 상리면 부포리 등지에 있다.

이와같이 '중고개'가 '장고개' 못지 않게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중이 넘어다니는 고개'라는 유래는 유사한 음으로 추측한 내용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중고개'는 지형으로 보거나 지명 명명의 유연성으로 보아 '잣고개'에서 '장고개', '중고개'로 변이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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