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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10.12 15:51:58
  • 최종수정2022.10.12 15:51:57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먹뱅이'라는 지명은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충북 지역에만 해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묵방리를 비롯하여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내산리의 먹뱅이, 묵방들, 금왕읍 육령리의 먹뱅이,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의 먹뱅이, 보은군 수한면 묘서리의 먹뱅이들,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의 먹뱅이 들이 있는데 한결같이 한자로 '묵방리(墨房里)'라 표기하면서 '먹(墨)'과 관련된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예전에 먹을 만드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 '먹방'이었기 때문에 '먹방'이 마을의 이름이 되는 경우가 있었고, 선비들이 많이 살았거나 서당이 있었던 마을도 '묵방, 묵실' 등으로 부르게 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먹뱅이'는 자연스럽게 '먹방(墨房)'과 연관 짓거나, '먹(墨)'의 '검다'는 의미를 가지고 유래나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충북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는 소백산맥 준령의 천마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옛 이름은 먹(墨)을 만드는 마을이라 하여 '먹뱅이', 또는 '묵방동(墨芳洞)'이라 불렸고, 지금도 마을 앞 골짜기인 복골(福谷)에는 먹을 굽던 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의 '먹뱅이'의 유래를 보면 "옛날 어느해 설날에 이 마을에 있는 김서방네 집에서 아낙네와 색시들이 널뛰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소낙비가 내리더니 하늘에서 먹구름이 흘러와 김서방네 집을 둘러싸고는 천둥소리와 번개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러다가 한참만에 먹구름이 서서히 동녘으로 사라졌는데 그 때 김서방의 아내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먹구름이 끼고 한 아낙네가 없어진 곳이라 하여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먹뱅이라 부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남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는 먹을 만드는 곳이라 하여 먹뱅이 또는 묵동이라 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마을 앞 별매산에 '필봉(筆峰)'이 있고, 마을 동쪽에 '연수등(硯水嶝)'이 자리하며 서쪽에는 등잔봉(燈盞峰)이 있고 북쪽의 마을 주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옥녀가 글을 쓰려 할 때 붓과 벼루는 있는데 먹이 없어 마을 이름을 먹뱅이라 했다는 설이 전해져 온다.

다른 지역의 '먹뱅이'들에서도 예전에 묵(서예)을 자영하거나 학문을 숭상하는 문필사우의 후예가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면 먹뱅이라는 지명은 왜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것일까?

'먹뱅이'란 '묵은 배미'가 변이된 말로서 '농사를 짓지 않고 묵히는 농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옛날에는 농업사회이기 때문에 농토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농토가 없는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남의 농토를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인이 대부분이었고, 남의 집의 머슴살이를 하거나 화전민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농지에 농사를 짓지 않고 묵히는 묵밭, 묵은 배미가 많았던 것일까?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비료가 없었기에 오직 지력에 의해서만 농사를 지었고 농토에는 인분, 가축분뇨, 퇴비 등으로 거름을 했으나 지력을 회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화전민들도 산을 개간해 한번 농사를 지으면 지력이 감퇴해 다음해에는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기에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새로 개간해 농사를 짓는 일이 되풀이되므로 산지의 곳곳에 잡초가 우거진 묵은 배미가 많았다. 더욱이 사냥꾼이나 화전민과 같은 유목 생활을 벗어나 일정한 곳에 모여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같은 농지를 재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화곡류는 연작으로 지력이 감퇴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면 지력을 회복하는 방법은 휴한농법이 유일했다. 오늘날은 각종 비료를 사용하거나 품종 개량, 다른 품종의 연작 등을 통해 묵히는 농지가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아주 흔한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농사를 짓지 않고 묵히는 묵은 배미를 가리키는 '먹뱅이'가 지명으로 정착돼 여러 지역의 지명이 된 것이다. 그런데 '먹뱅이'를 음차해 한자로 '묵방리(墨房里)'라 표기하다보니 먹과 관련된 유래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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